생 테밀리옹 이틀째 날은 별다른 계획없이 발길 닿는대로 주변 와이너리 순례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이날이 일요일인지라 교통량도 한산하고 해서 드라이브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생 테밀리옹(Saint Émilion)
먼저 와이너리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인포메이션 센터로 향합니다. 인포메이션 센터의 한쪽 벽면에는 엄청난게 큰 와인 지도가 걸려 있었는데, 방문객이 와이너리 이름이 쓰여진 버튼을 누르면 지도의 LED에 불이 켜지면서 위치를 알려주더군요. 그런데 샤토의 수가 생각보다 엄청 많았습니다. 밀집도도 엄청나구요. 순간적으로 어디를 가야할지 모를정도로 멍해집니다. 그래도 들은 풍월로 몇몇 샤토의 위치를 파악하고 출발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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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린게 와이너리라 신비감도 없어요 |
마을 초입을 벗어나자 마자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띕니다. 클로 데 자코뱅(Clos Des Jacobins)입니다. 저녁 식사 때 거만한 소믈리에가 자신 만만하게 서빙해 준 바로 그 와인이라서 그런지 뇌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담한 크기의 샤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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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인만 생각하면 같이 먹었던 음식이 자동으로 떠올라요 |
다음으로 찾아보려는 와이너리는 생 테밀리옹을 대표하는 두 곳, 바로 샤토 오존(Chateau Ausone)과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입니다. 생 테밀리옹의 와인 품질 분류 체계는 특1등급인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와 그랑 크뤼 클라세로 분류가 됩니다.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는 다시 A등급과 B등급으로 나뉘는데 지금 제가 가보려 하는곳이 바로 A등급 인정을 받은 2곳입니다. 식당 가격 기준으로 병당 500유로를 상회하는 최고급 와인에 해당하는데 둘 다 카베르네 프랑과 멜롯을 주 품종으로 블렌딩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샤토 오존은 4세기경 이 지역에 살았던 라틴 시인 오존의 이름을 따온 와이너리인데 규모가 가장 작은 축에 속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어디에 붙어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은 잘도 찾는 모양인데, 대충 저기쯤 되겠거니 하고 감만잡고 왔더니 도무지 모습을 드러네질 않습니다. 그냥 패스합니다.
샤토 슈발 블랑은 이름에 화이트를 의미하는 블랑(Blanc)이 들어가서 사람들을 많이 횟갈려하는 와인입니다. 블랑은 이 지방을 상징하는 유명한 백마를 와인 이름에 사용하려다 보니 여차여차 해서 들어간 것이고 사실은 전형적인 레드 와인입니다. 생 테밀리옹과 포므롤에 걸쳐 있는 이 곳에 도착해보니, 이런... 리노베이션 중에 있습니다. 커다란 가림막이 입구를 막고 있었고 관계 차량만 통행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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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만 간신히 |
두 군데 와이너리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다시 시동을 거는데 길 맞은편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띕니다. 샤토 피작(Chateau Figeac)처럼 보입니다. 샤토 피작은 강의 오른편에 있지만 카베르네 쇼비뇽의 함유가 많은 관계로 서안의 와인과 가장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 와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름이 좀 틀립니다. 샤토 라 투르 드 팽 피작(Chateau La Tour Du Pin Figeac) 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이건 샤토 피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와이너리 였군요. 생 테밀리옹에서는 연속으로 헛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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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지말자 피작 - 피작 이름이 들어간 와이너리가 무려 151개 |
포므롤은 작은 도로 하나를 경계로 생 테밀리옹과 맞닿아 있는 작은 마을 입니다. 바로 옆마을이지만 분위기는 좀 더 조용하고 오밀조밀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니 포도를 수확하고 있는 아낙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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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다 여자분들 |
안내 표지판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보니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바로 페트뤼스(Petrus)와 샤토 르 팽(Chateau Le P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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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뤼스는 가운데, 르 팽은 왼쪽 구하단에… 잘 보면 보여요 |
천천히 차를 몰고 움직이다 보니 페트뤼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지만 대단히 정갈한 모습의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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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뤼스 앞에 샤토를 붙인 와이너리와는 구별 |
아시다시피 페트뤼스는 멜롯이 95% 이상 함유되어 있습니다. 수확철이라서 그런지 포도밭에는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열려 있습니다. 열매의 맛은 우리가 과일로 먹는 포도보다 훨씬 당도가 높습니다. 크기는 훨씬 작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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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뤼스네 멜롯 |
샤토 르 팽은 재배 면적이 2 에이커, 그러니까 가로 세로 해봤자 100m 정도에 불과한 작은 와이너리입니다. 워낙 명성이 높아서 쉽게 찾을 수 있을것이라고 봤는데 주변을 아무리 돌아도 진입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의 밭을 빙글빙글 돌다가 대충 이곳이겠구나 하고 셔터를 누르고 발길을 옮겼습니다.
보르도에서 남쪽으로 40 Km를 내려오면 귀부 와인의 산지 소테른에 도착합니다. 귀부는 귀하게 썩었다라는 영어의 Noble Rot을 한자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귀하게 썩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은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라고 하는 귀부균의 작용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포도알이 썩어 가면서 수분은 증발되고, 알맹이가 작아지고 농축되어 매우 당도가 높은 상태가 되는데 이것으로 만든 와인이 바로 소테른의 스위트 와인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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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eau Guiraud 앞의 안내판 - 일요일도 오픈하는 샤토 |
소테른 와인의 대표 주자는 역시 샤토 디캠(Chateau d’Yquem)입니다. 방문날이 일요일이라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고, 주변 포도밭을 산책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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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만 오픈 |
사실 소테른 와인에 대해서 별로 아는게 없어서 와이너리를 봐도 감흥이 별로 없었습니다. 여행에서 말하는 소위 아는만큼 본다는게 와인의 경우에도 그대로 들어 맞는것 같더군요. 그래서 작전을 바꿔서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프랑스의 와인 산지에는 마을마다 메종 드 뱅이라고 하는 일종의 자기네 마을 와인 홍보관이 하나씩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와인 설명과 함께 무료 테이스팅도 가능하고, 원하면 구입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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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소테른 |
이곳에 갔더니 정말이지 소테른 와인 천국이더군요. 테이스팅을 해보자고 했더니 취향을 물어 보면서 드라이한 것을 맛보겠냐고 합니다. 웬 드라이? 하고 있었는데 스위트 와인이면서도 드라이한것이 있고 매우 매우 매~우 달짝찌근 한것도 있다고 알려 줍니다. 양 극단을 먹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래 사진과 같은 두 종류의 중가 와인을 내놓습니다. 소테른 와인은 보통 디저트로 먹기 때문에 그 자체를 즐겨도 좋지만, 블루 치즈와 함께 먹으면 맛이 더 끝내 줄거라는 얘기며, 의외로 메인 코스의 가금류와도 잘 어울린다는 얘기 등 직원의 설명이 끝도 없습니다. 결국 여기를 나올 때 저의 손에는 시음 했던 두 병의 와인이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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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템한 20 유로대의 소테른 와인들 |
마지막으로 가게 안에 진열된 95년 산 샤토 디캠입니다. 저 예술적인 색상 좀 보세요.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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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버틴다는... |
보르도 와인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로 선택한 곳은 마고 마을입니다. 마고의 와인은 흔히 여성적이고 우아하다는 표현을 씁니다만, 실제로 마을 자체가 매우 정돈되고 잘 관리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맨 처음 들린곳은 샤토 지스쿠스(Chateau Giscour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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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 본관 |
메인 도로에서 다소 벗어나 안쪽으로 깊게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진작 알았으면 이곳에서 1박을 했으면 좋을 곳이었습니다. 샤토 건물 자체도 좋았지만 넓직한 정원과 주차장, 숙박 시설과 레스토랑 등 모든게 갖춰진 와이너리 였습니다. 위치도 메독 제일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에도 편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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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게 아름다웠던... |
다음으로 옮겨간 곳은 이 마을의 지존,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입니다. 입구에 도착하니 중국 관광객을 태운 관광 버스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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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가격 좀 오를지도... |
먼저 밭을 둘러 보니 포도 나무 줄기가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균 수령이 35년 정도 된다고 하니, 그 동안 봤던 포도 나무가 장난처럼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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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는 얼마나 내려가 있을지 |
이곳은 방문객이 많아서 그런지 별도 주차 안내요원이 있더군요. 한국에서 마트에서 그러듯이 주차할 구획과 주차 간격을 일일히 지정해 주는 모습이 익숙한 듯 낯설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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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마고 정문에서 |
포도밭을 따라서 길게 형성된 가로수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으로 샤토 마고의 간단 모드 방문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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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이 꽤 인상적 |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는 샤토 팔메(Chateau Palmer)입니다. 이곳은 사전에 미리 예약을 잡아 놓아 정식 투어가 예정된 곳입니다. 위치가 샤토 마고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야 투어 시간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만 보르도에서 오는 다른 예약자들이 나타나지를 않는 통에 15분 정도 늦게 저와 와이프만을 위한 단독 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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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투어로 시작... 그룹 투어로 마감 |
먼저 밭으로 나가 봅니다.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어려 보이길래 물어보니 그들은 16살 정도의 덴마크 학생들 이라고 합니다. 내일부터는 벨기에 농업 학교 학생들도 합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네요.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팔메는 설립 초기부터 지역 협력, 산학 협력을 강조 했기 때문에 전세계로 부터 신청을 받아 포도 수확철에 투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포도를 따는 일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고 체력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용돈 받고, 학점 따고, 체력 단련하니 좋고, 와이너리 입장에서는 비용 줄고, 잠재적 미래 고객 확보하니 좋으니 서로에게 ‘윈-윈’인것 같았습니다. 한가지 웃긴 점은 프랑스 학생은 말 안듣고 게을러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한숨과 함께 돌아온 점인데 뭐 농담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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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솔 교사가 제일 힘들답니다 ㅋㅋ |
여기서 한가지 정보. 올해의 경우 이상 기온으로 포도 품질, 특히 멜롯의 품질이 매우 형편 없었다고 하네요. 그 대안으로 예년보다 수확 시기를 넘겨서 좀 시간을 벌면 발육이 좋아질까 기대도 했는데 오히려 수확 시기를 넘기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최단시간 내에 수확을 하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3년 후 결과가 주목됩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투어를 이어가던 중, 다른 와이너리에서는 못보던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오크 배럴을 관리하는 건물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열심히 칠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인 즉, 오크통을 제조하는 회사에서는 원래 아무 색도 입히지 않은 채로 납품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가운데에 붉은색이 칠해져 있는 오크통은 와이너리에서 별도의 후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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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다 손으로 칠한다구? |
투어의 마지막은 시음장에서 마무리 됩니다. 오늘의 시음은 샤토 팔메 1996년산과 세컨드 와인인 알터 이고 드 팔메(Alter Ego de Palmer) 2007년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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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베르네 소비뇽과 멜롯이 각각 47%씩 |
음~~~부드러운 과일향과 제비꽃향은 확실하군요. 샤토 팔메는 15년이 지나면 마실 시기가 되는데 1996년산의 경우 디캔팅 후 30분 후 마시면 좋을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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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퍼스트 라벨 |
투어를 마치고 나니까 기념으로 와이너리를 소개한 영문 책자를 하나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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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다 읽으면 박사될 듯 |
우리도 그냥 떠나려니까 웬지 섭섭한듯 해서 결국 우리가 시음했던 96년산 샤토 팔메 한병을 사들고 투어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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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그린거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