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6일 화요일

2010년 보르도 여행기(6) - 보르도(Bordeaux)시의 야경

오늘(2010년 9월27일)은 마드리드부터 시작된 약 2주간의 스페인-프랑스 여행의 마지막 1박을 남겨 놓은 날입니다. 내일이면 보르도역에서 TGV로 파리로 이동해서 샤를 드골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편에 몸이 실려 있을 것입니다

보르도로 돌아와서 차를 반납하고 호텔에 투숙을 하니 벌써 해가 어둑어둑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중간에 보르도 시내의 교통 지옥에 한번 당하고, 렌터카 리턴하는 곳에서 입차가 안되는 황당한 일 한번 겪고, 만원 트램에 낑겨서 호텔까지 올 때 까지만 해도 보르도는 전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만...보르도의 야경은 왜 이 도시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게 됩니다.

먼저 우리가 묵었던 리젠트 그랜드 호텔의 모습 입니다.
가격만 착했더라면...
보르도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교통도 편했지만 서비스의 수준이 엄청났습니다. 시설 좋은 리조트 호텔이야 여러 곳이 있겠지만 호텔의 ‘격’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느껴보는 건 거의 처음인것 같습니다. 갑자기 70년대 영화 속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해 주더군요.
고풍스러울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호텔 앞 광장을 마주 보고는 18세기에 지어진 대극장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가 이곳을 벤치마크 했을 정도로 유명세를 지닌 건물입니다.
12 기둥에 12 여신상
호텔 건물 1층에는 별도의 출입구를 가진 포숑(Fauchon)의 마카룽 가게가 있었는데, 매장 연출이 예술 수준이라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마카룽을 사려는 사람보다 많아 보일 정도 였습니다.
프랑스에선 마카룽을 - 강추입니다
보르도의 거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내뿜고 있습니다. 어딜간던 볼 수 있는 화강암 건물과 은은한 간접 조명은 여기가 보르도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저를 사로잡은 것은 가론 강가에 위치한 물의 거울(Water Mirror) 이었습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찍은 모습은 사실 특별할게 없었습니다. 큰 광장에 얕고 잔잔한 물을 채웠다가 가끔씩 증기를 내뿜으면서 안개 효과를 내는 수준이었지요.
낮에는 이런데...
그런데, 저녁 식사 후 어둠이 완전히 내린 후 다시 들른 이곳은 환상 그 자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의 보르도 주식 거래소 건물이 물의 거울속으로 완벽하게 빨려 들어가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과학 - 반사율과 굴절율의 조화
참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이곳은 또 하나의 보르도 랜드마크가 되어 이곳을 방문한 전세계 방문객에게 지울 수 없는 각인을 새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앞의 가론강가를 보니까 현지 청소년들이 한국 걸그룹의 춤과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저희가 옆을 지나가니까 더 신이나서 춤을 추는데 곧잘 합니다. 저야 걸그룹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들이 갖고 있는 코드가 전세계 청소년의 감성 코드와 일치한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이 날은 보르도의 밤거리를 원없이 걷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 * *
2010년 9월28일.

오늘은 2주간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는 날입니다.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생 장역에 도착합니다. 역사에서 이곳 저곳 두리번 거리니까 여지 없이 누군가가 와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하네요. 이 분은 툴루즈로 출장간다는 노신사인데 잘 하지도 못하는 영어지만 성심껏 도움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벌써 이런 도움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
보르도 생 장 역

파리에서는 몽파나스역에서 내렸습니다. 이곳에서 에어프랑스가 운행하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면 됩니다. 버스가 파리의 어떤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데 갑자기 거대한 에펠탑이 보입니다.

순간적으로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저게 왜 여기있지? "

그리곤 자문자답.
"여기 파리잖아!"
여러모로 파리는 깨는 도시

2010년 보르도 여행기(5) - 드라이브하면서 만나는 와이너리들

생 테밀리옹 이틀째 날은 별다른 계획없이 발길 닿는대로 주변 와이너리 순례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이날이 일요일인지라 교통량도 한산하고 해서 드라이브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생 테밀리옹(Saint Émilion)
먼저 와이너리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인포메이션 센터로 향합니다.  인포메이션 센터의 한쪽 벽면에는 엄청난게 큰 와인 지도가 걸려 있었는데, 방문객이 와이너리 이름이 쓰여진 버튼을 누르면 지도의 LED에 불이 켜지면서 위치를 알려주더군요. 그런데 샤토의 수가 생각보다 엄청 많았습니다. 밀집도도 엄청나구요. 순간적으로 어디를 가야할지 모를정도로 멍해집니다. 그래도 들은 풍월로 몇몇 샤토의 위치를 파악하고 출발을 해봅니다.
널린게 와이너리라 신비감도 없어요
마을 초입을 벗어나자 마자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띕니다. 클로 데 자코뱅(Clos Des Jacobins)입니다. 저녁 식사 때 거만한 소믈리에가 자신 만만하게 서빙해 준 바로 그 와인이라서 그런지 뇌리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아담한 크기의 샤토입니다.
여기 와인만 생각하면 같이 먹었던 음식이 자동으로 떠올라요
다음으로 찾아보려는 와이너리는 생 테밀리옹을 대표하는 두 곳, 바로 샤토 오존(Chateau Ausone)과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입니다. 생 테밀리옹의 와인 품질 분류 체계는 특1등급인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와 그랑 크뤼 클라세로 분류가 됩니다.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는 다시 A등급과 B등급으로 나뉘는데 지금 제가 가보려 하는곳이 바로 A등급 인정을 받은 2곳입니다. 식당 가격 기준으로 병당 500유로를 상회하는 최고급 와인에 해당하는데  둘 다 카베르네 프랑과 멜롯을 주 품종으로 블렌딩을 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샤토 오존은 4세기경 이 지역에 살았던 라틴 시인 오존의 이름을 따온 와이너리인데 규모가 가장 작은 축에 속합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어디에 붙어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은 잘도 찾는 모양인데, 대충 저기쯤 되겠거니 하고 감만잡고 왔더니 도무지 모습을 드러네질 않습니다. 그냥 패스합니다.

샤토 슈발 블랑은 이름에 화이트를 의미하는 블랑(Blanc)이 들어가서 사람들을 많이 횟갈려하는 와인입니다. 블랑은 이 지방을 상징하는 유명한 백마를 와인 이름에 사용하려다 보니 여차여차 해서 들어간 것이고 사실은 전형적인 레드 와인입니다.  생 테밀리옹과 포므롤에 걸쳐 있는 이 곳에 도착해보니, 이런... 리노베이션 중에 있습니다. 커다란 가림막이 입구를 막고 있었고 관계 차량만 통행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지붕만 간신히
두 군데 와이너리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다시 시동을 거는데 길 맞은편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띕니다. 샤토 피작(Chateau Figeac)처럼 보입니다. 샤토 피작은 강의 오른편에 있지만 카베르네 쇼비뇽의 함유가 많은 관계로 서안의 와인과 가장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 와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름이 좀 틀립니다. 샤토 라 투르 드 팽 피작(Chateau La Tour Du Pin Figeac) 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이건 샤토 피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와이너리 였군요. 생 테밀리옹에서는 연속으로 헛방입니다.
속지말자 피작 - 피작 이름이 들어간 와이너리가 무려 151개

포므롤(Pomerol)
포므롤은 작은 도로 하나를 경계로 생 테밀리옹과 맞닿아 있는 작은 마을 입니다. 바로 옆마을이지만 분위기는 좀 더 조용하고 오밀조밀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마을에 도착하니 포도를 수확하고 있는 아낙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근데 다 여자분들
안내 표지판에 차를 세우고 지도를 보니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바로 페트뤼스(Petrus)와 샤토 르 팽(Chateau Le Pin).
페트뤼스는 가운데, 르 팽은 왼쪽 구하단에… 잘 보면 보여요
천천히 차를 몰고 움직이다 보니 페트뤼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작지만 대단히 정갈한 모습의 건물입니다.

페트뤼스 앞에 샤토를 붙인 와이너리와는 구별
아시다시피 페트뤼스는 멜롯이 95% 이상 함유되어 있습니다. 수확철이라서 그런지 포도밭에는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열려 있습니다. 열매의 맛은 우리가 과일로 먹는 포도보다 훨씬 당도가 높습니다. 크기는 훨씬 작구요.
페트뤼스네 멜롯
샤토 르 팽은 재배 면적이 2 에이커, 그러니까 가로 세로 해봤자 100m 정도에 불과한 작은 와이너리입니다. 워낙 명성이 높아서 쉽게 찾을 수 있을것이라고 봤는데 주변을 아무리 돌아도 진입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의 밭을 빙글빙글 돌다가 대충 이곳이겠구나 하고 셔터를 누르고 발길을 옮겼습니다.

소테른(Sauternes)
보르도에서 남쪽으로 40 Km를 내려오면 귀부 와인의 산지 소테른에 도착합니다. 귀부는 귀하게 썩었다라는 영어의 Noble Rot을 한자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귀하게 썩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은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라고 하는 귀부균의 작용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포도알이 썩어 가면서 수분은 증발되고, 알맹이가 작아지고 농축되어 매우 당도가 높은 상태가 되는데 이것으로 만든 와인이 바로 소테른의 스위트 와인이 되겠습니다.
Chateau Guiraud 앞의 안내판 - 일요일도 오픈하는 샤토
소테른 와인의 대표 주자는 역시 샤토 디캠(Chateau d’Yquem)입니다. 방문날이 일요일이라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고, 주변 포도밭을 산책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만 오픈
사실 소테른 와인에 대해서 별로 아는게 없어서 와이너리를 봐도 감흥이 별로 없었습니다. 여행에서 말하는 소위 아는만큼 본다는게 와인의 경우에도 그대로 들어 맞는것 같더군요. 그래서  작전을 바꿔서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프랑스의 와인 산지에는 마을마다 메종 드 뱅이라고 하는 일종의 자기네 마을 와인 홍보관이 하나씩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와인 설명과 함께 무료 테이스팅도 가능하고, 원하면 구입도 할 수 있습니다.
메종 드 소테른
이곳에 갔더니 정말이지 소테른 와인 천국이더군요. 테이스팅을 해보자고 했더니 취향을 물어 보면서 드라이한 것을 맛보겠냐고 합니다. 웬 드라이? 하고 있었는데 스위트 와인이면서도 드라이한것이 있고 매우 매우 매~우 달짝찌근 한것도 있다고 알려 줍니다. 양 극단을 먹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래 사진과 같은 두 종류의 중가 와인을 내놓습니다. 소테른 와인은 보통 디저트로 먹기 때문에 그 자체를 즐겨도 좋지만, 블루 치즈와 함께 먹으면 맛이 더 끝내 줄거라는 얘기며, 의외로 메인 코스의 가금류와도 잘 어울린다는 얘기 등 직원의 설명이 끝도 없습니다. 결국 여기를 나올 때 저의 손에는 시음 했던 두 병의 와인이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득템한 20 유로대의 소테른 와인들
마지막으로 가게 안에 진열된 95년 산 샤토 디캠입니다.  저 예술적인 색상 좀 보세요. 어휴…
100년도 버틴다는...

마고(Margaux)
보르도 와인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로 선택한 곳은 마고 마을입니다. 마고의 와인은 흔히 여성적이고 우아하다는 표현을 씁니다만, 실제로 마을 자체가 매우 정돈되고 잘 관리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맨 처음 들린곳은 샤토 지스쿠스(Chateau Giscours) 입니다.

우람한 본관
메인 도로에서 다소 벗어나 안쪽으로 깊게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진작 알았으면 이곳에서 1박을 했으면 좋을 곳이었습니다. 샤토 건물 자체도 좋았지만 넓직한 정원과 주차장, 숙박 시설과 레스토랑 등 모든게 갖춰진 와이너리 였습니다. 위치도 메독 제일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에도 편해 보였습니다.
모든게 아름다웠던...
다음으로 옮겨간 곳은 이 마을의 지존,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입니다. 입구에 도착하니 중국 관광객을 태운 관광 버스가 있었습니다.
와인 가격 좀 오를지도...
먼저 밭을 둘러 보니 포도 나무 줄기가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균 수령이 35년 정도 된다고 하니, 그 동안 봤던 포도 나무가 장난처럼 보이는군요.
뿌리는 얼마나 내려가 있을지
이곳은 방문객이 많아서 그런지 별도 주차 안내요원이 있더군요. 한국에서 마트에서 그러듯이 주차할 구획과 주차 간격을 일일히 지정해 주는 모습이 익숙한 듯 낯설게 느껴집니다.
샤토 마고 정문에서
포도밭을 따라서 길게 형성된 가로수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으로 샤토 마고의 간단 모드 방문을 마무리 합니다.
가로수길이 꽤 인상적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는 샤토 팔메(Chateau Palmer)입니다. 이곳은 사전에 미리 예약을 잡아 놓아 정식 투어가 예정된 곳입니다. 위치가 샤토 마고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야 투어 시간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만 보르도에서 오는 다른 예약자들이 나타나지를 않는 통에 15분 정도 늦게 저와 와이프만을 위한 단독 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단독 투어로 시작... 그룹 투어로 마감
먼저 밭으로 나가 봅니다.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어려 보이길래 물어보니 그들은 16살 정도의 덴마크 학생들 이라고 합니다. 내일부터는 벨기에 농업 학교 학생들도 합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네요.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팔메는 설립 초기부터 지역 협력, 산학 협력을 강조 했기 때문에 전세계로 부터 신청을 받아 포도 수확철에 투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포도를 따는 일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고 체력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용돈 받고, 학점 따고, 체력 단련하니 좋고, 와이너리 입장에서는 비용 줄고, 잠재적 미래 고객 확보하니 좋으니 서로에게 ‘윈-윈’인것 같았습니다. 한가지 웃긴 점은 프랑스 학생은 말 안듣고 게을러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한숨과 함께 돌아온 점인데 뭐 농담이었겠죠.
인솔 교사가 제일 힘들답니다 ㅋㅋ
여기서 한가지 정보. 올해의 경우 이상 기온으로 포도 품질, 특히 멜롯의 품질이 매우 형편 없었다고 하네요. 그 대안으로 예년보다 수확 시기를 넘겨서 좀 시간을 벌면 발육이 좋아질까 기대도 했는데 오히려 수확 시기를 넘기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최단시간 내에 수확을 하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3년 후 결과가 주목됩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투어를 이어가던 중, 다른 와이너리에서는 못보던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오크 배럴을 관리하는 건물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열심히 칠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설명인 즉, 오크통을 제조하는 회사에서는 원래 아무 색도 입히지 않은 채로 납품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가운데에 붉은색이 칠해져 있는 오크통은 와이너리에서 별도의 후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네요.
저걸 다 손으로 칠한다구?
투어의 마지막은 시음장에서 마무리 됩니다. 오늘의 시음은 샤토 팔메 1996년산과 세컨드 와인인 알터 이고 드 팔메(Alter Ego de Palmer) 2007년산 입니다.
카베르네 소비뇽과 멜롯이 각각 47%씩
음~~~부드러운 과일향과 제비꽃향은 확실하군요. 샤토 팔메는 15년이 지나면 마실 시기가 되는데 1996년산의 경우 디캔팅 후 30분 후 마시면 좋을거라고 합니다.
오른쪽이 퍼스트 라벨
투어를 마치고 나니까 기념으로 와이너리를 소개한 영문 책자를 하나 주네요.
이거 다 읽으면 박사될 듯
우리도 그냥 떠나려니까 웬지 섭섭한듯 해서 결국 우리가 시음했던 96년산 샤토 팔메 한병을 사들고 투어를 마감합니다.
직접 그린거에요

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2010년 보르도 여행기(4) - 생 테밀리옹 이야기

사실 이곳을 들르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생 테밀리옹(Saint Émilion)은 그저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이라던가 샤토 오존(Chateau Ausone)등 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유서 깊은 와인 산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이 마을과, 바로 옆 마을인 포므롤(Pomerol)의 와이너리나 구경할 생각으로 하루 쯤 묵기에 적당한 호텔을 알아보고 있던 중, 이 마을이 통째로 1999년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갑자기 호기심이 급 상승하면서 이곳에서 2박을 묵기로 계획을 급 변경합니다. 호텔 예약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마도 시간이 촉박한데다 주말을 끼고 있어서 그랬지 싶습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는 전부 방이 없다고 나오는 통에 직접 호텔에 연락했더니 별관에 남이 있는 방이 있는데 쓰겠냐고 합니다. 그땐 무슨 얘긴지 했었는데 도착해 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호텔의 메인 건물과 완전히 독립적인 2층 짜리 건물의 키를 내어줍니다.


숙소 베란다에서 본 거리 모습
짐을 풀고 슬슬 동네 구경을 떠나봅니다. 좁고 구불 구불한 돌길은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느낌을 줍니다.
보기보단 무지 가파릅니다 - 하이힐은 재앙
이 동네는 신축이나 개축을 할 때도 반드시 석회암을 사용하고, 색상을 일치시키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2010년 오늘 날에도 1,000년도 더 된 마을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숙소가 있는 쪽에서 마을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벨 타워쪽의 풍경을 보면 이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벨 타워 주변엔 5성 호텔, 미슐랭 식당, 관광 안내소, 노천 카페가 있어요
마을 어디를 봐도 한결 같은 분위기를 자아 냅니다.

보르도시의 건축물들도 이곳 화강암으로 지었대요
한편 마을 바깥 쪽으로 눈을 돌리면 포도밭으로 둘러쌓고 외곽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멀리 남쪽엔 도르도뉴 강이
샤토 밀집도가 꽤 높아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우선 골목 골목마다 위치한 와인샵들이 눈에 띕니다. 와인 리스트를 얼핏 보니 고급 와인들이 빈티지까지 완벽하게 갖춘채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문을 하면 항공편으로 집까지 배달을 해준다고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자기네 와인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설레발이 재미있습니다.
한국으로는 안되겠지요
그 밖에 공예품 가게, 전시장 등 볼거리도 꽤 있었고,  마카룽 가게, 카페, 바, 레스토랑 등먹고 쉴 환경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전통 마카룽은 생각보단 별로
그런데 진짜 생 테밀리옹을 보려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소위  ‘겉’ 모습에 관한 것이었고, 나머지 반쪽에 해당하는 ‘속’ 모습은 지하에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벨 타워가 서 있는 땅 지하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모놀리식(Monolithic) 교회가 그 주인공입니다.
입구로 가려면 급 비탈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와야
모놀리식이란 단일 (화강암) 석재를 말합니다. 보통의 건축물은 벽돌이나 가공된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건물을 완성하는데 반해서, 모놀리식은 거대한 암석을 안에서부터 파내면서 건물을 완성하는 구조입니다.
문을 들어가면 사진 찰영은 금지
이쯤에서 잠시 역사 공부를 하겠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요약하면:
  • 8세기 중반 에밀리옹(Emilion)이라는 수도승이 이 지역에 정착하여,
  • 암석에 동굴을 파고 은둔 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삶을 살자,
  • 그의 선행을 따라고자 하는 수도승들이 이 지역세 집결하여 그를 따르기 시작함.
  • 에밀리옹이 죽자 그를 성자(Saint)라 부르고 마을을 생 테밀리옹으로 명명.
  • 후세 은자들이 기적을 행하자 더 많은 사람과 수도승이 집결하면서 번성함.
  • 12세기에는 더 이상 밀려드는 사람을 수용하지 못해 요새화가 됨 (성벽과 타워).
  • 11~13세기에 에밀리옹의 초기 동굴을 확장해서 지금의 모놀리식 교회를 완성.
  • 13세기부터 영/불간 전쟁에 휩쓸려 양측 모두의 약탈의 대상이 되면서 황폐화.
  • 19세기 중반까지 방치되다가 이후 와인 산업이 뜨면서 다시 각광을 받음.
가이드를 따라 좁고 가파른 지하 동굴의 층계를 내려가니 수도승 에밀리옹이 살았다는 작은 공간이 나옵니다. 작은 샘물이 나는 공간도 있고, 수행하던 기도실, 침실과 의자터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한쪽 끝자락에 나무로 된 문이 있길래 물어보니까 어처구니 없게도 그 문 뒷 공간은 와인샵이라고 합니다. 하마터면 귀중한 문화 유산이 와인 창고로 쓰일 뻔한 것이었지요.

에밀리옹의 거처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출입구로 들어가니 모놀리식 교회로 연결됩니다.  도저히 이곳이 단일 석재라는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생각보다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닥 면적은 60x20 미터 정도되고 높이도 10 미터를 상회하더군요. 커다란 예배실과 선택받은 자의 무덤이 있었고 예배당 천장에는 트리티니 조각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꽤 충실하게 이곳 저곳을 설명해 줍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돔형 천장과 그 주변 기둥을 온갖 서포터로 지지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얘기인즉슨 이 지하 교회 바로 위에는 벨 타워와 5성 호텔이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벨 타워의 무게 중심이 지하 교회 돔 아치의 무게 중심과 일치하지 않는 바람에 하중 분산에 문제가 발생해서 이런식으로 임시 조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밀을 공유한 사이처럼 동네의 모든것이 새롭게 보이는군요.
사연이 많은 동네였구나...
어둠이 내리자 마을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상점이나 카페는 문을 닫는 대신 레스토랑이 일제히 불을 켭니다.  굳이 식사 생각이 없다가도 좁다란 골목을 타고 퍼지는 음식 향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치명적인 마력을 발휘합니다. 한국에서의 프랑스 요리는 웬지 고고하고 까탈스러운 느낌을 받곤 했었는데, 이곳에 오니까 가정식 백반처럼 친근함으로 다가 옵니다.

7시30분쯤 되니까 사람들이 식당으로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첫날인 오늘은 사람들이 제일 북적거리는 식당을 선택해 봅니다.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 자리가 모자라 보였는데 곧 능숙한 솜씨로 야외 테라스에 공간을 마련해서 식탁을 차려 줍니다.
요로큼 생겼지요
제가 메인 요리로 선택한 것은 Veal 이라고 부르는 어린 송아지로 만든 요리입니다. 생후 4개월 미만의 도축된 송아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직 고기 색깔이 빨갛게 변하기 전 단계입니다. 당연히 더 연하고 섬세하며 지방이 없습니다. 소스와의 조화도 훌륭합니다. 먹는 내내 어쩜 이런 맛이 나올까 감탄하면서 아껴 먹었습니다.
veal은 16주 미만 송아지, calf는 5개월 이상된 송아지, beef는 어른소
와이프의 메인 요리는 Maigre 라고 부르는 생선 요리였는데, 처음으로 먹어 본 맛이었습니다. 맛이 하도 인상적이길래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으면 다시 먹어볼까 해서 생선 이름(Maigre)를 적어 왔습니다. 구글링을 해보니까 프랑스 여행 중에 맛을 본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로 돌아와서 이 생선을 찾고 있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뭔지 아무도 - 프랑스인도!!! -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프랑스 요리 전문가가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았는데 그에 따르면 지중해산 농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생선 이름이라는게 지방마다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경우가 많아서 혼란이 생긴다는 설명과 함께.

물론 와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지역 와인인 샤토 트라포(Chateau Trapaud) 2001년산을 한병 깠습니다. 멜롯 70%, 카베르네 쇼비뇽 20%, 카베르네 프랑 10%가 함유된 와인이었는데 생각보다는 묵직하고 알코올맛도 강한 편이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테라스에서의 저녁 식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조그마한 식당에서 비교적 간단한 코스 메뉴를 먹었는데도 2시간을 훌쩍 넘겨 버립니다.
디저트는 마카룽으로
둘째 날의 저녁은 Le Clos du Roy 라는 식당에서 했습니다.  원래 이 날의 계획은, 저녁은 최대한 가볍게 때운 후 시간을 확보해서 밤에는 야경이나 구경하면서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마을 중심지에서 좀 떨어진 없어 보이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밖에서 보니까 내부에 테이블도 몇개 없고, 골목길에서 삐끼질 하고 있던 쥔장도 검소(?)하게 생겼길래 이거다 하면서 들어갔습니다.
수수한 외관
그리고 나서 1분. 우리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이런... 넓직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홀이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주 제대로 된 레스토랑을 고른 것입니다. 가벼운 저녁의 계획은 사라지고 또 다시 만찬을 즐겨야 하나 봅니다. 이렇게 된 이상 뭐 즐기는 수 밖에요. 오늘은 아예 식전주(아페르티보)부터 시작해봅니다.
아싸. 또 먹어보자
오늘의 와인은 소믈리에에게 부탁해 보기로 합니다. 여기 소믈리에는 아주 별종입니다. 행동이 나무늘보와 한판 겨뤄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느림보입니다.  게다가 웃음기 없는 얼굴에 항상 거만한 표정을 하고 다녀서 우리가 건방진 소믈리에라고 별명을 붙여 줬습니다. 그런데 와인에 대해서는 도사십니다. 와인 리스트를 꿰뚫고 있으면서 줄줄 읖조리는데 도무지 막힘이 없습니다. 오늘은 이 친구의 추천 와인 중의 하나인 클로 데 자코뱅(Clos des Jacobins) 2006 을 먹어 보기로 합니다.  완전 슬로우모션으로 디캔팅 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더니 와인의 밸런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품종을 물어 보니까 ‘멜롯’이라고 한 마디를 하고선 씨익 웃는군요. 소믈리에의 자긍심이란…
멜롯 75%, 카베르네 프랑 23%, 카베르네 쇼비뇽 2%
휘돌리기가 정말 잘 되던 잔
요리는 기대 이상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음식에 대한 철학은 ‘모든 음식은 평등하다’ 였습니다. 음식은 곧 문화이고, 문화는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최적화되도록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 것이 좋고 나쁜게 없다는게 제 지론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식사를 하다보니  ‘프랑스 음식은 우월하다’라고 생각이 변하는 듯 합니다.  다른건 몰라도 기교와 다양성을 따라갈 요리가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시작은 푸아그라로 시작해서 새우 샐러드로 연결 됩니다. 생선 요리는 도미를 내어 주는데 곁드려 나오는 가니시(Garnish)가 오히려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운 배추에 발사믹은 누구 생각이었을까
오늘의 메인은 오리 구이와 카네로니(Canelloni)입니다. 처음엔 담백한 식감과 달달한 풍미에 ‘이게 오리가 맞아?’ 할 정도로 감탄스러웠고,  씹을수록 되살아나는 원래 고유한 오리의 맛이 뒷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아... 보고 있으면 향기가 난다
디저트로는 치즈 모듬과 마카룽입니다.
디저트는 계속 마카룽으로만 달립니다
주체못할 포만감으로 식당을 나와, 인적이 끊긴 길을 따라 호텔로 가면서 생각해 봅니다. 
"살라고 먹는 것도 아니고, 먹을라고 사는 것도 아니다. 주니까 먹는 것이다…"
아름다운… 그러나 너무 배부른…생 테밀리옹의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