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1일 일요일

2011년 부르고뉴 여행기(3) - 몽라세 마을

코르마탱 방문을 마치고 향한 다음번 행선지는 몽라세(Montrachet) 마을입니다. 네비게이션에서 로컬 옵션을 선택한 후 한적하다 못해 스산한 프랑스 농촌길을 따라 북으로 향합니다.
개미 한 마리 없었다는


이렇게 한 50분간 드라이브를 하니 드디어 몽라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전세계에서 가장 좋은 드라이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죠. 마을의 광장 한복판에는 포도를 수확하는 농부상이 마을의 자긍심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기가 마을 중심
마을 자체야 뭐 특별한게 없습니다. 전형적인 프랑스 부자 농촌 마을의 모습입니다. 
마을을 후따닥 둘러보고 우리의 진짜 목적지인 올리비에 레플레브(Olivier Leflaive)의 와인 시음 식당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1층은 식당, 위층은 호텔


이 건물의 1층은 'La Table D'Olivier Leflaive' 라는 와인 시음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 위층은 'La Maison D'Olivier Leflaive' 라고 부르는 숙박 시설이 있었습니다.

올리비에 레플레브는 원래는 가족 공동체으로 운영되는 도멘 레플레브의 상속인 2인 중 한명이 었지만, 일찌감치 네고시앙으로 독립해서 현재는 고품질의 와인을 배출하는 네고시앙으로 알려진 분입니다. 자가 소유의 밭도 많을 뿐 아니라 네고시앙 보틀링을 통해서 자기 이름을 단 와인을 직접 시장에 내놓고 있었습니다.
이게 다 이 분이 출시하고 있는 와인들

이 식당에서는 시음 와인 종류에 따라 15 유로, 25 유로, 35 유로의 3가지의 메뉴가 갖춰져 있습니다. 가령 15 유로 메뉴를 시키면 5가지의 와인이 서빙되고, 35 유로 메뉴는 10가지 와인이 서빙되는 식입니다. 여기에 별도로 25 유로의 식사 메뉴를 시키면 와인과 마리아주를 체험할 수 있는 안주 거리를 잔뜩 가져다 줍니다.

저희는 10 종류 와인 시음 메뉴를 선택했습니다.

첫번째 서빙되는 와인은 Bourgogne Les Setties 2009 입니다.
제일 저가의 와인부터 시작하는군요. AOC 적용을 받지 않는, 그러니까 부르고뉴 이곳 저곳에서 수확한 포도(샤르도네)를 합쳐서 만든 와인입니다.  현지에선 12유로 정도 거래되는 와인인데 특별한 퀄리티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친숙한 맛의 와인입니다.
다음 단계는 한번에 3가지의 와인을 비교 테이스팅하는 코스입니다.
이번에는 한단계 급을 높혀서 마을 단위 와인들이 사용되었는데,
모두 2008년 빈티지에 낮은 지대의 밭에서 생산된 와인입니다.

외관상으로는 모두 동일하게 보이지만 전부 다른 종류입니다. 왼쪽부터 샤사뉴 몽라세(Chassagne-Montrache), 뫼르솔(Meursault), 퓔리니 몽라세(Puligny-Montrache)입니다.
생산자와 빈티지가 동일하고 품종은 100% 샤르도네이며 기후와 고도도 비슷한 곳에서 생산된 와인입니다. 오직 포도를 재배하는 마을이 다를 뿐 입니다.

서빙하는 분의 말을 빌자면 테루아의 차이를 느껴보라는 의도라고 합니다.
뭐 특별한 차이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생각으로 마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럴수가. 세 와인이 모두 확실히 구별되는 맛과 향 그리고 피니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같은 샤르도네 품종의 와인임에도 이렇게 구별되는 맛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와인을 계속 홀짝거리고 있다보면 먹을 거리가 나옵니다.
참치와 연어
샐러드와 닭고기






























이번에는 음식 궁합 테이스팅이군요.
앞서 마셨던 와인들이 음식과 곁들여 먹을 때 어떤 식으로 맛의 변형이 오는지를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잔뜩 기대를 갖고 시음에 들어갔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떤 음식과 같이 먹느냐에 따라 와인의 선호도가 바뀌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치와 화이트 와인이 이렇게 조화를 잘 이룬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주위를 보니 어느덧 가게안은 만원이 되어 있었고 입장을 못해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곳이 특히 인상적인 것은 테이블 마다 전담 서버가 있어서 서빙되는 와인에 대해 거의 강의 수준으로 세부적인 설명을 해준다는 점이 었습니다. 그런 점이 참여자들의 몰입도를 높혀서 이곳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 오르게 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이곳이 대박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음번 와인들이 입장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3 종류가 한꺼번에 제공되었는데 차이점은 먼젓번 와인들보다 한 등급 위의 와인들이라는 점입니다.

앞서의 와인들이 마을 단위의 와인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마을의 특정 밭에서 만든 와인입니다. 밭은 모두 1등급(1er Cru) 밭이었고 2007년 빈티지가 제공되었습니다. 이런 좋은 밭들은 보통 구릉 지대의 높은 곳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햇빛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조건과 원할한 배수가 키 포인트라고 하더군요.

시음한 와인은 Chassagne-Montrache 1er Cru Abbaye de Morgeot, Meursault 1er Cru Charmes, Puligny-Montrache 1er Cru Garennes 입니다.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마시기 편한 측면에서만 보면 먼저 번 와인들이 더 나은 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이번 와인들은 무슨 뽐내기 대회에 나온 와인 마냥 개성이 도드라졌습니다. 아마도 몇 년 더 지나서 최적의 시음 시기가 되면 밸런스가 잡히면서 마시기도 편하면고 깊이도 있는 와인으로 변모하겠죠.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던 와중에 우리 테이블로 노신사가 와서 인사를 합니다.
누군가 했는데 맙소사 이 집의 주인장이랍니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남깁니다.
Olivier Leflaive와 함께


이제 테이스팅은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순서대로 보면 가장 고가이자 오늘의 유일한 그랑 크뤼급 와인이었던 코르통 샤를마뉴 2007(Corton Charlemagne Gran-Cru 2007)이 나오고, 그 뒤를 이어 레드 와인 2종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레드 와인은 모두 코트 드 본(Cote de Beaune) 지방에서 피노 누아로 만든 레드 와인인데, 포마르(Pommard 2007)와 볼네이 미탄(Volnay 1er Cru Mitnas 2007)이 그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때쯤 되니까 너무 취해서 와인맛이 잘 구별되지는 않았습니다. 요령껏 마셨어야 했는데 주는대로 다 마시다보니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레드 와인도 남김없이 마셔버리고 정해진 순서를 완주했습니다.
전투의 흔적들


레드 와인은 치즈와 함께





























이곳에서의 체험을 마친 후의 느낌은
여기 오지 않았으면 어찌할 뻔 했겠나 정도로 만족도 100% 였습니다.

분위기도 좋고 와인맛은 더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시음 코스 내내 재미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이런 식으로 와인을 죽 늘여 놓고 비교 시음을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낯선 곳에서 소원을 성취한 셈입니다.







2012년 3월 5일 월요일

2011년 부르고뉴 여행기(2) - 샤토 디쥬와 코르마탱

오랜 운전끝에 드디어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 입성했습니다.

첫날은 남부 부르고뉴의 샤토 디쥬(Cheateau D'Ige)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습니다. 프랑스에는 오랜된 고성을 호텔로 리모델링해서 운영 하는 이른바 샤토 호텔이 약 500여개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곳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주로 참고하는 여행 사이트인 tripadvisor.com 에서 평가가 너무 좋아서 선택을 해봤습니다.

호텔 외관은 그야말로 샤토스럽습니다.
4성급입니다
체크인을 마치고 배정받은 3층 타워방으로 향하는데 원형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가녀린 메이드가 우리짐을 옮겨 줬는데 불안불안합니다.
엘리베이터는 없어요

건물 자체는 오래됐지만 객실 내부는 리모델링을 완벽히 해서 완전 특급 호텔 수준입니다.
침실은 매우 고풍스럽고 욕실은 매우 현대적입니다. 욕실 비치품의 수준을 보더니 와이프가 싱글벙글입니다.
벽지가 아니라 예전 방식의 벽지천








밖으로 나갔더니 꽤 넓은 정원이 펼쳐지고 정원 끝자락에는 별채가 2동 있는데 일종의 스위트(suite) 룸이라고 합니다.
호텔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1층으로 내려가니 여주인이 직접 안내를 해줍니다. 유창한 영어로 우리를 안내하는데 꼭 보여줄게 있다고 하더니 건물 지붕쪽을 가리킵니다. 자세히 보니 개 조각상이 있었는데 예전에 꽤 유명한 충견이었다고 자랑을 엄청하더군요.
우리집 강쥐도 나중에 하나 만들어 줘?

드디어 본격적인 식사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식당이 아닌 야외 테라스로 안내하네요.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아페리티프(Apèritif)와 미자 부쉬(Mise à bouche)를 이곳에서 즐기라는 건가 봅니다.
이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샴페인을 한 잔씩 시키니 요깃거리가 함께 나옵니다. 식전주를 마시면서 천천히 주메뉴와 와인을 선택했습니다. 주방에서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이곳에서 놀고 있으면 됩니다. 어두컴컴해지니 난방용 가스등과 조명을 밝혀 주는데 분위기가 죽여 줬습니다.
본격적인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네요. 먼저 앙트레(Entrée)로 나온 푸아그라와 버섯 샐러드입니다.
푸와그라 테린

버섯 샐러드

오늘의 메인으로는 와이프는 새우 요리를 저는 엽조류 로스트 요리를 선택했습니다.
샤육 비둘기로 추정되는




이 뒤를 이어서 프로마지(치즈), 데세르(디저트), 카페(커피)로 주욱 이어지는데 맛도 물론 훌륭했지만 분위기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도회풍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오래된 고택에 초대 받아서 식사를 즐기는 그런 느낌이 있어 좋았고, 말은 안통했지만 그림을 그려 가면서 요리를 설명하는 친절함에 감동했습니다.

부르고뉴에 왔는데 와인이 빠지면 안되죠. 와인 리스트를 받아보니 역시나 두툼합니다. 유명 마을의 특급밭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의 가격은 여전히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국내에 비하면 많이 저렴한 편입니다.
La Tache(라 타슈)가 120만원이라...
저희는 유혹을 물리치고 저렴하게 마셨습니다. 샹볼-뮤지니(Chambolle-Musigny) 마을의 라 콤 도르브(La Combe d'Orveau) 밭에서 도멘 안 그로(Anne Gros)가 만든 2007년산 입니다.
치명적인 매력의 피노누아
다음날은 일찍 기상하여 샤토에서 주는 아침을 먹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으면서 보니 손님의 대부분은 영국인이더군요. 식사 후에는 간단히 마을을 한바퀴 산책했습니다만 워낙 외진곳이라 특별히 볼 거리는 없었습니다.
이젠 이곳을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호텔에서는 인근의 코르마탱(Cormatin)을 가 볼 것을 권유합니다. 마침 가는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에 한 번 들려보기로 합니다. 한적한 시골도로를 따라 북으로 30분 가량 달리니 코르마탱 마을이 나오고 마을의 주차장이 관광객의 차들로 가득합니다. 급 호기심 발동하여 사람들을 따라 표를 사고 그들을 쫓아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갑니다. 이곳은 뭐하는 곳일까요.

조금 걷다 보니 갑자기 눈앞에 다음과 같은 광경이 펼쳐집니다.
Chateau de Cormatin

또 하나의 성이군요. 그런데 아직도 이곳이 뭔지를 몰랐습니다. 어떨결에 투어 대열에 합류해서 40분 가량 진행되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17세기 초 이 지역의 유력한 가문의 귀족이 그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지은 거주용 대 저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17세기의 귀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 기간에도 보관중이던 와인을 모두 풀어 민심을 달래는 방식으로 이곳만은 화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형 유지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파리의 바르세유 궁전이 왕가의 화려한 유물을 전시해 놓은 것이라면 이곳은 지방 귀족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화려한 침실

전세계에서 모았다는 수집품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시간과 돈이 너무 넘쳐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예술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온 저택이 진귀한 보물과 수집품으로 넘쳐 납니다. 정원도 이미 당시부터 설계한 것이라고 하는데 스케일이 대단했습니다.
미로가 있는 정원
정원에서 본 성의 후면





























이렇게 코르마탱 성 방문을 마무리 합니다. 예정에 없는 일정이었지만 나름대로 유익한 방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부르고뉴의 심장부로 향해 들어갑니다.

2012년 2월 27일 월요일

2011년 부르고뉴 여행기(1) - 피게레스에서 부르고뉴까지

오늘은 보르도와 더불어 프랑스의 2대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Bourgogne)로 입성하는 날입니다. 이 글은 스페인 북동부 국경 도시 피게레스에서 프랑스 남부 부르고뉴로의 여정의 기록입니다.

[오전 9시30분 피게레스역 앞]
렌트카를 반납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원래 예정 시간보다 30분 먼저 온것인데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군요. 작년에도 경험한 바 있어 별로 놀랄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영국인 노신사 부부는 붉으락 푸르락입니다. 곧 온다던 직원은 10시10분이 되어서야 도착하더니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과를 시작하네요. 지리한 차 반납 수속을 마친 그 영국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니며 "스-패-니-쉬"라는 의미 심장한 샤우팅을 하면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며칠 전 토렌스 와이너리에서 '밭 사이로 막가' 사건이 있어서 사실 조마조마 했습니다. 하필이면 보험도 제일 기본만을 가입한터라 잘못하면 쌩돈이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습니다. 그 직원은 포도 나무에 긁힌 잔기스 자국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더니 능숙한 행동으로 견적에 들어갑니다.

그녀가 청구한 금액은 무려 700 유로. 너무 큰 액수이기에 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돈을 내더라도 한 번 따져 보기로 합니다. 우선 이게 스크래치인지 기스인지 부터 개념 정리부터 들어가서 기스쪽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다음은 수리 방식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해서 약바르고 헝겊으로 문지르는 방향으로 설득했습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인건비 산정 방식은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종 합의한 금액은 150 유로. 나름대로 선방했습니다만 속이 쓰립니다.


[오전 10시50분 총알 택시로 피게레스-빌라판트역 까지]
렌트카 사무실에서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여유있을 줄 알았던 열차 시간이 아슬아슬해졌습니다. 더군다나 고속열차는 이 역사가 아닌 새로 생긴 피게레스-빌라판트(Figueres-vilafant)역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셔틀 버스 이런 거 없습니다. 택시를 탔더니 총알로 달리더군요. 덕분에 열차 출발 10분 전에 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11시10분 프랑스 님 행 TGV 탑승]
피게레스에서 남부 부르고뉴까지의 거리는 약 600 Km 남짓됩니다. 적은 거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먼 거리도 아니어서 애초에는 직접 차를 몰고 가는 방안을 고려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통과해서 차를 반납하는 경우의 수수료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거의 3000 유로가 소요된다고 해서 바로 포기했습니다. 대신, 프랑스 님(Nimes)까지는 기차를 이용하고, 님에서 다시 차를 렌트하기로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님까지의 기차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출발할 때는 완연한 스페인 풍이었던 열차 분위기는 프랑스 도시들을 지날 때 마다 조금씩 프랑스틱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풍경도, 언어도, 사람도 조금씩 변했습니다.

[오후 1시45분 프랑스 님 ]
님(Nimes)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2000년도에 한 번 여행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로마 제국 시대의 유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만 도시를 음식으로 기억하는 저에게는 어레나(원형경기장) 주변의 조그마한 식당에서 먹었던 프랑스식 대구 매운탕의 도시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당시에는 언제 다시 오겠냐 했었는데 살다보니 이런 재회의 기회도 오는군요.

이곳에서 차를 다시 빌려 길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역 주변의 교통 상황이 심히 안 좋습니다.
사방이 공사 구간이고, 좁근 골목길에 버스 전용 차선제를 시행하지 않나, 차선 방지턱이 세로 방향으로 놓여 있어서 옆 차선으로 이동을 못하게 하질 않나... 도심을 빠져 나오는데 곤혹을 치뤘습니다. 한 번은 뛰에서 빵빵거리던 승합차가 우리차 옆으로 오더니 손바닥을 얼굴 안쪽으로 향하도록 들어 올리는 항의 자세를 취하더군요. 그 운전자를 보던 와이프가 한마디 합니다.

와이프:
"저 사람이 우리보고 멍청하다고 했어"

나:
"어떻게 알았는데?"

와이프:
"영화에서 많이 본 포즈야"
"이런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구 할 때 나오는 포즈"
[Photo credits: Courtesy of Guido Indij/Gestiarium]
[오후 2시 30분 프랑스 아비뇽 인근 ]
사실 모든 것은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굳이 님(Nimes)에 하차한 것도, 거기서 차를 빌린 것도 모두가 다 아비뇽(Avinon) 인근의 로마 시대 수교인 퐁 뒤 가르(Pont du Gard)를 둘러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전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수로 인근에 있는 핵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난 것이지요. 방사능과 관련이 없었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고, 당시에는 좀 심각했습니다. 도로 통제 소식도 있고 해서 분기점에서 주저주저 하다가 그대로 통과해 버려습니다.

2000년도 여행에서는 뭘 몰라서 놓쳤었는데, 이번에는 벼르고 왔는데도 안되는군요.
아마도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Source and License: Wikimedia Commons]


[오후 5시 리옹 통과]
프랑스 고속도로 운전은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 보다도 쉽고 심리적 부담감도 없습니다.
추월 차로와 주행 차로에 대한 주행 방식이 운전자들 사이에 공통적인 룰로 자리잡혀 있기 때문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속 차량은 철저히 오른쪽 차선을 사용하고, 추월시에만 왼쪽편 차선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 주행하던 차선으로 복귀합니다. 이 룰이 1,2 차선 뿐만 아니라 전 차선에 대해서 적용하다보니 대단히 효율적인 운행이 가능합니다.
저속 차량이건 고속 차량이건 자기가 앞차에 의해 속도를 제약받는 법도 없을 뿐 더러, 자기 때문에 뒷차가 지체되는 상황도 방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룰도 트래픽이 어느 정도 흐를때나 적용되는 얘기였습니다.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리옹(Lyon)이 가까워지자 여지없이 대도시 교통 정체가 나타났습니다. 이 때 부턴 백약이 무효였고 최대한 눈치껏 운전을 해야했습니다. 리옹에서 워낙 막히는 바람에 론 강을 끼고 있는 리옹 시내 전경을 천천히 관망할 수 있는 어부지리 소득도 있었지만 아무튼 많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오후 6시 남부 부르고뉴 입성]
리옹에서 약 40분을 더 지나서 마꽁(Macon)이라는 도시에 도착하자 드디어 고속도로에서 벗어 났습니다. 이제부턴 로컬길을 타고 갑니다. 고속도로에선 느끼지 못했던 부르고뉴의 정취가 한 순간에 몸을 감싸돕니다.

아싸~~ 다왔다.







2012년 2월 26일 일요일

2011년 스페인 여행기(8) -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는 북부 국경 인근에 있는 피게레스(Figueres) 입니다. 이곳을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달리 미술관(Dalí Theatre and Museum)을 방문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학창시절 교과서나 가끔씩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는 달리의 작품을 접할때 마다 느낀 "이 사람 뭐지?"라는 호기심이 이곳을 그냥 건너뛸 수 없게 했습니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개관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을 했습니다. 미술관 바로 옆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 건너편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오픈 시간을 기다립니다.

길 건너편에서 본 미술관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웬, 달걀들?


예쁘다거나 멋있다는 수사가 어울리는 외관은 아닙니다만 매우 특이하긴 합니다.
벽에 점처럼 붙어있는게 뭔가 싶어 가까이 가봅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짓을 수용할 수 있을까

ㅋㅋ 벽에 '똥' 을 잔뜩 발라 놨습니다. 이것도 초현실주의 작가의 오브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문은 위 사진상의 벽면을 따라 쭉 내려가서 왼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매표소와 건물 출입구가 같이 있습니다.
달리가 흠모한 철학자 Francesco Pujols

드디어 입장 시간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초현실주의자 달리를 만나러 들어갑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작은 옥외 정원이 있고, 그 안에 요상한 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1978년작 "Car-naval"


난해합니다. 캐딜락이 있고 풍만한 여인의 동상에 타이어 더미. 그리고 맨 위에는 보트가 뒤집혀져 있습니다.

이 정원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빙 둘러가며 전시실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부에서 보면 복도를 따라 한편엔 전시실이 배치되어 있고,
복도의 다른 한편으로는 아까 본 캐딜락이 있는 정원을 볼 수 있는 창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첨엔 오스카 트로피인 줄 알았다는











그 다음에는 화살표를 따라 전시실을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하면 됩니다.
그런데 확실히 여타 미술관과는 다른 뭐가 있습니다.
처음 느낌은 당혹감 그 자체, 그 다음은 감탄스러움, 마지막에는 동화되어 즐기는 느낌.
거의 모든 작품이 이 패턴으로 다가오더군요.

한쪽 구획에는 이런 그림들만 잔뜩 있습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또 다른 구획에는 이런 그림들로만 가득합니다.
난 왜 스타워즈가 연상이 되는 것인지

그런가 하면 돌의 질감을 사용해서 사물을 표현한 그림만으로 전시된 방도 있습니다. 짐작컨대 뭔가에 필이 꼿이면 끝장을 내는 성격이었나 봅니다.
이런 그림만 한가득



메인홀의 한켠에는 링컨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니까 그림의 내용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더 가까이 보니까 나신의 여인이 바다를 보는 풍경으로 바뀝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링컨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





























영락없는 여인과 바다 풍경


다음은 제일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바람의 궁전(Palace of the winds)방으로 가보겠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천장에 그린 그림. 천장을 뚫고 하늘로 비상하는 환상적인 작품입니다.
이 그림상의 두 주인공은 달리 자신과 부인인 갈라라고 하네요.
1973년작 Palace of the winds
이 방의 침실로 들어가봅니다.
말이 침실이지 억만금을 준다해도 맘편히 잘 수는 없는 그런  장치들이 가득합니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왠지 익숙한 벽에 걸린 직물 인쇄 그림.

달리의 대표작인 기억의 지속(Persistence of memory)을 이런식으로 직물에 인쇄를 해서 침실 벽면에 걸어 놨습니다. 흔히 늘어진 시계 그림이라고 알려진 이 그림의 원본은 뉴욕 MOMA에서 보관 전시 중이라고 합니다. 침대 머릿말에 자태가 아름다운 해골도 보입니다.

다음은 제가 본 침대중에 가장 강렬한 인상의 침대입니다.
포인트는 침대를 받치고 있는 다리입니다.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당혹스럽긴 한데 점차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 듭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충격 작품.

첨엔 뭔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메두사의 몸통 부분을 숟가락을 엮어서 만들어놨습니다. 아~ 놔~

이 글에서 다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미술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 이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엄숙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놀이 동산에 온 듯한 느낌까지 났습니다. 당혹과 재미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더군요.

이곳에 와서 알게된 사실 중 하나는,  달리가 과학과 기술을 미술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전시물 중에는 여러 장의 그림을 거울과 함께 두 눈의 시야 차이를 고려한 배치를 해서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하는 작품도 있고,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달리의 3D 작품을 2D인 사진으로 보려니까 실감이 나질 않네요

마지막으로는 좀 생뚱맞은 작동 완구틱한 작품 몇 점을 보시겠습니다. 첨엔 이게 뭔가 하는 작품이 벽에 걸려 있고, 옆에 동전 투입구가 있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쪼그린 인형 같습니다.
궁금해서 동전을 넣어보니 저 인형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기지개 자세로 변합니다.
유치 찬란 짬뽕

이런게 몇 개 더 있는데 다음 보실 작품은 일본풍의 연이 펼쳐지는 모습이고, 그 다음 사진은 전자회로기판을 소재로 활용한 작품입니다. 추측컨대 70년대 전자 산업의 발전 시기에 받은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 먹고 연 펼치기 신공

전자 미이라와 PCB 장신구





























사실 미술관을 들어올때만 해도 까칠한 초현실주의 화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작품을 보고 나니까 인생 참 재미있게 살았던, 그리고 또 무진장 장난끼가 많았을것 같은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달리의 전기나 한번 읽어 봐야 겠습니다.
Salvador Domènec Felipe Jacinto Dalí i Domèn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