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보르도와 더불어 프랑스의 2대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Bourgogne)로 입성하는 날입니다. 이 글은 스페인 북동부 국경 도시 피게레스에서 프랑스 남부 부르고뉴로의 여정의 기록입니다.
[오전 9시30분 피게레스역 앞]
렌트카를 반납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원래 예정 시간보다 30분 먼저 온것인데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군요. 작년에도 경험한 바 있어 별로 놀랄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영국인 노신사 부부는 붉으락 푸르락입니다. 곧 온다던 직원은 10시10분이 되어서야 도착하더니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과를 시작하네요. 지리한 차 반납 수속을 마친 그 영국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니며 "스-패-니-쉬"라는 의미 심장한 샤우팅을 하면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며칠 전 토렌스 와이너리에서 '밭 사이로 막가' 사건이 있어서 사실 조마조마 했습니다. 하필이면 보험도 제일 기본만을 가입한터라 잘못하면 쌩돈이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습니다. 그 직원은 포도 나무에 긁힌 잔기스 자국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더니 능숙한 행동으로 견적에 들어갑니다.
그녀가 청구한 금액은 무려 700 유로. 너무 큰 액수이기에 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돈을 내더라도 한 번 따져 보기로 합니다. 우선 이게 스크래치인지 기스인지 부터 개념 정리부터 들어가서 기스쪽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다음은 수리 방식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해서 약바르고 헝겊으로 문지르는 방향으로 설득했습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인건비 산정 방식은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종 합의한 금액은 150 유로. 나름대로 선방했습니다만 속이 쓰립니다.
[오전 10시50분 총알 택시로 피게레스-빌라판트역 까지]
렌트카 사무실에서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여유있을 줄 알았던 열차 시간이 아슬아슬해졌습니다. 더군다나 고속열차는 이 역사가 아닌 새로 생긴 피게레스-빌라판트(Figueres-vilafant)역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셔틀 버스 이런 거 없습니다. 택시를 탔더니 총알로 달리더군요. 덕분에 열차 출발 10분 전에 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11시10분 프랑스 님 행 TGV 탑승]
피게레스에서 남부 부르고뉴까지의 거리는 약 600 Km 남짓됩니다. 적은 거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먼 거리도 아니어서 애초에는 직접 차를 몰고 가는 방안을 고려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통과해서 차를 반납하는 경우의 수수료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거의 3000 유로가 소요된다고 해서 바로 포기했습니다. 대신, 프랑스 님(Nimes)까지는 기차를 이용하고, 님에서 다시 차를 렌트하기로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님까지의 기차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출발할 때는 완연한 스페인 풍이었던 열차 분위기는 프랑스 도시들을 지날 때 마다 조금씩 프랑스틱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풍경도, 언어도, 사람도 조금씩 변했습니다.
[오후 1시45분 프랑스 님 ]
님(Nimes)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2000년도에 한 번 여행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로마 제국 시대의 유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만 도시를 음식으로 기억하는 저에게는 어레나(원형경기장) 주변의 조그마한 식당에서 먹었던 프랑스식 대구 매운탕의 도시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당시에는 언제 다시 오겠냐 했었는데 살다보니 이런 재회의 기회도 오는군요.
이곳에서 차를 다시 빌려 길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역 주변의 교통 상황이 심히 안 좋습니다.
사방이 공사 구간이고, 좁근 골목길에 버스 전용 차선제를 시행하지 않나, 차선 방지턱이 세로 방향으로 놓여 있어서 옆 차선으로 이동을 못하게 하질 않나... 도심을 빠져 나오는데 곤혹을 치뤘습니다. 한 번은 뛰에서 빵빵거리던 승합차가 우리차 옆으로 오더니 손바닥을 얼굴 안쪽으로 향하도록 들어 올리는 항의 자세를 취하더군요. 그 운전자를 보던 와이프가 한마디 합니다.
와이프:
"저 사람이 우리보고 멍청하다고 했어"
나:
"어떻게 알았는데?"
와이프:
"영화에서 많이 본 포즈야"
"이런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구 할 때 나오는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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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credits: Courtesy of Guido Indij/Gestiarium] |
사실 모든 것은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굳이 님(Nimes)에 하차한 것도, 거기서 차를 빌린 것도 모두가 다 아비뇽(Avinon) 인근의 로마 시대 수교인 퐁 뒤 가르(Pont du Gard)를 둘러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전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수로 인근에 있는 핵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난 것이지요. 방사능과 관련이 없었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고, 당시에는 좀 심각했습니다. 도로 통제 소식도 있고 해서 분기점에서 주저주저 하다가 그대로 통과해 버려습니다.
2000년도 여행에서는 뭘 몰라서 놓쳤었는데, 이번에는 벼르고 왔는데도 안되는군요.
아마도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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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nd License: Wikimedia Commons] |
[오후 5시 리옹 통과]
프랑스 고속도로 운전은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 보다도 쉽고 심리적 부담감도 없습니다.
추월 차로와 주행 차로에 대한 주행 방식이 운전자들 사이에 공통적인 룰로 자리잡혀 있기 때문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속 차량은 철저히 오른쪽 차선을 사용하고, 추월시에만 왼쪽편 차선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 주행하던 차선으로 복귀합니다. 이 룰이 1,2 차선 뿐만 아니라 전 차선에 대해서 적용하다보니 대단히 효율적인 운행이 가능합니다.
저속 차량이건 고속 차량이건 자기가 앞차에 의해 속도를 제약받는 법도 없을 뿐 더러, 자기 때문에 뒷차가 지체되는 상황도 방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룰도 트래픽이 어느 정도 흐를때나 적용되는 얘기였습니다.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리옹(Lyon)이 가까워지자 여지없이 대도시 교통 정체가 나타났습니다. 이 때 부턴 백약이 무효였고 최대한 눈치껏 운전을 해야했습니다. 리옹에서 워낙 막히는 바람에 론 강을 끼고 있는 리옹 시내 전경을 천천히 관망할 수 있는 어부지리 소득도 있었지만 아무튼 많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오후 6시 남부 부르고뉴 입성]
리옹에서 약 40분을 더 지나서 마꽁(Macon)이라는 도시에 도착하자 드디어 고속도로에서 벗어 났습니다. 이제부턴 로컬길을 타고 갑니다. 고속도로에선 느끼지 못했던 부르고뉴의 정취가 한 순간에 몸을 감싸돕니다.
아싸~~ 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