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1일 화요일

2011년 스페인 여행기(4) - 바르셀로나 타파스 바 : Tickets

여행 - 혹은 더 광범위하게 출장을 포함해서 - 의 즐거움 중에 식도락이 없다면  "도대체 여행을 왜 가는걸까? " 이게 제가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따라서 길거리 음식, 시장 음식 그리고 파인 다이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미각 체험은 절대 사양하는 법이 없는 편입니다.

이번 여행에서의 저의 식사 패턴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침은 일찍 문연 노상 카페에서 커피와 빵, 오렌지 주스로 때웁니다. 점심과 간식은 관광지 주변의 식당에서 30분 이내에 먹을 수 있는 이동성을 고려한 식사 선택. 그리고 저녁은 무조건 만찬 고고.

오늘 소개할 곳은 티켓츠(Tickets)라는 곳입니다. 2010년 오픈을 했으니까 역사와 전통 뭐 이런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요. 그럼에도 이곳이 유명해진건 지금은 없어졌지만 지난 수년 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영예를 누린 엘 불리(El Bulli)의 스타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à)의 명성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알버트 아드리아가 그의 형 페란을 설득해서 조금 더 쉽고, 조금 더 카탈루냐 색이 강한 음식점을 오픈하게 된것이지요. 이 레스토랑의 성격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조합해야 설명이 됩니다.  타파스 바 형식의 파인 레스토랑.

예약은 홈페이지(http://www.ticketsbar.es/en)를 통해 3개월 전부터 할 수 있긴한데 광클릭이 필요합니다. 저도 어렵게 어럽게 예약에 성공해서 밤 10시에 자리 2개를 확보했습니다.

드디어 입장. 입구는 뮤지컬 박스 오피스를 본 따서 만들었습니다. 이 레스토랑의 이름이 왜 티켓츠(Tickets) 인지 슬슬 감이 오기 시작합니다. 어떤 공연이 올라올지 기대가 되는군요.
여기서 티켓 예약자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안내를 받아서 테이블에 앉습니다. 내부는 이미 손님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 테이블에서 입구쪽을 보면서 한장
주방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오픈된 주방
자리에 착석하니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서버가 메뉴판을 가져 오는 데 흡사 공연 티켓 한 장 보는 느낌입니다.
메뉴판에 두 형제 오너가 모델로 있군요
메뉴 구성은 영어로 설명이 잘 되어 있긴한데 내용을 보고 이게 무슨 요리인지, 양은 얼마나 되는지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긴 요리를 창조적 활동의 결과로 보는 사람 집에 왔으니 얼마나 창조적으로 비틀어 댔겠습니까? 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 불러야지. 서버를 불러서 알아서 달라고 했습니다. 와이프가 육류를 못먹으니까 해산물 위주의 메뉴 구성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첫번째 작품.
Fruit impregnated with Sangria
멜론류의 과일을 스페인식 와인 칵테일인 상그리아에 절인 입가심용 음식입니다. 와인병을 반을 쪼개 서빙 접시로 사용하는 아이디어가 재밌습니다.

참고로 우리가 곁들인 와인은 카탈루냐 지역 와인인 카스텔 델 르메(Castell del Remei) 입니다. 소비뇽 블랑과 마케베우이 블렌딩된 산도도 좀 있고, 열대 과일향이 강한 놈 입니다.
Castell del Remei Blanc
두번째 선수 입장.
Jamon de Toro
지중해산 참치의 뱃살 부위를 얇게 저민 위에 땅콩 부스레기와 소량의 소금을 얹어 냈습니다. 원래는 참치위에 하몽의 기름을 살짝 발라 주는건데 와이프를 배려해서 생략을 하더군요. 생와사비를 얹어 먹던 우리 방식에 너무 익숙하다보니 처음에는 이 귀한 참치 뱃살을 땅콩이랑 먹는 무례를 참기 어려웠는데... 막상 입안에 들어가고 보니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랄까. 황홀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관찰 포인트 하나. 참치를 올린 요리용 페이퍼를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실 수 있습니다.
"THIS IS NOT A TAPAS BAR"
ㅎㅎ. 자기네를 여타 타파스 바 처럼 보지말라 달라는 얘기 같습니다.

다음은 모듬 튀김이 나옵니다.
Variety of small fried fish with seaweed powder
보시다시피 우리가 알던 그런 튀김옷과 전혀 다릅니다. 기름기가 전혀 없고 바삭함 그 자체이면서 원 재료의 풍미는 제대로 살려냅니다. 이런거 한국에 군것질용 음식으로 들여오면 대박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잠시 합니다.

다음 요리는 오늘 먹었던 것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었던 접시입니다.
Mini airbags stuffed with Manchego cheese and Iberian bacon
첨에는 베이비 슈(Cream Puff) 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말랑한 빵안에 만체고 치즈를 채웠습니다. 원래 의도대로 이베리코산 베이컨까지 집어 넣었으면 괜찮은 맛이 나올뻔 했는데
역시 와이프 배려하느라 이 과정을 생략했더니 좀 맹숭맹숭하고 평범한 음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네요.

이어서 새우 요리가 등장합니다.
Gamba Hervida
신선한 새우를 살짝 삶아서 서빙하는데 까지는 특별함이 없습니다. 감동은 함께 먹는 소스에 있었습니다. 마요네즈에 해초류를 가미한 저 소스에 새우를 듬뿍 찍어 껍질채 한웅큼 배워 물면 내가 새우를 먹는건지, 새우가 나를 먹는건지. 나는 다시 바닷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다음은 두 종류의 생굴이 서빙되는군요. 먼저 사진.
Raw oyster with pearl
Raw oyster with sherry vinegar 
일단 한눈에 봐도 재료의 신선함은 알아 줘야 할 듯 합니다. 재료 자체의 맛으로만도 감지 덕지 할 듯 싶은데 과연 여기에는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먼저 첫번째 사진을 보면 가운데 영롱한 진주가 보입니다. 근데 저거 먹는 진주입니다. 먹는 진주? 말이 안되잖아요. 그렇습니다. 아드리아 형제의 장난이지요. 분자 요리의 흔적을 여기서 보여 주는군요.

두번째 굴요리는 쉐리 식초와 굴의 마리아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쉐리(Sherry) 와인은 원래 스페인식으로 헤레즈(Jerez)라고 불러야 제 맛이 나는데 영국애들이 잘못 알아 듣고 만든 명칭입니다. 아무튼 스페인 남부지방의 헤레즈 와인으로부터 만든 식초를 쉐리 비니거 또는 헤레즈 비니거라고 부르는데 가격이 후덜덜 하죠. 풍미와 향이 너무 특이해서 이것을  스프나 탕에 넣음으로써 비로소 스페인식 요리를 완성시켜 주는 존재랍니다.

맛은 어떨까요?  비교적 단순하고 직선적인 굴의 풍미가 식초 하나 넣었을 뿐인데 갑자기 풍성한 음식으로 변모가 됩니다. 이래서 요리사를 창조의 직업이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이어서 서빙되는 라비올리. 파스타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군요.
Liquid ravioli 


이렇게 먹다보니 어느덧 디저트 차례가 왔습니다....만....  잠시 디저트를 보류하고 옆 테이블에서 먹던 음식을 곁눈질해서 이베리코 하몽을 주문해 봅니다.
하몽써는 서버
Air baguette with Iberico Jamon
얇은 바게트 빵에 방금 썬 이베리코 하몽을 돌돌 말아 서빙됩니다.
아삭함과 부드러움,
담백함과 기름기,
싱거움과 짭조름함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이거 안먹고 갔으면 무진장 후회할 뻔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디저트를 끝으로 모든 순서를 마무리합니다.
디테일
식사를 마친 시간은 어느덧 11시30분이 가까워 옵니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몇 접시 더 먹었을텐데 이 아쉬움은 다음을 위해 남겨 놓기로 합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테이블에 있는 모든 이의 얼굴에 행복이라고 씌여 있습니다.

[가격 정보]
식음료(식전주, 와인, 커피)를 제외한 순수 음식값: 87 유로/2인
식음료 값: 40 유로

엘 불리의 흔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