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7일 월요일

2011년 부르고뉴 여행기(1) - 피게레스에서 부르고뉴까지

오늘은 보르도와 더불어 프랑스의 2대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Bourgogne)로 입성하는 날입니다. 이 글은 스페인 북동부 국경 도시 피게레스에서 프랑스 남부 부르고뉴로의 여정의 기록입니다.

[오전 9시30분 피게레스역 앞]
렌트카를 반납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원래 예정 시간보다 30분 먼저 온것인데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군요. 작년에도 경험한 바 있어 별로 놀랄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영국인 노신사 부부는 붉으락 푸르락입니다. 곧 온다던 직원은 10시10분이 되어서야 도착하더니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과를 시작하네요. 지리한 차 반납 수속을 마친 그 영국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니며 "스-패-니-쉬"라는 의미 심장한 샤우팅을 하면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은 우리 차례입니다. 며칠 전 토렌스 와이너리에서 '밭 사이로 막가' 사건이 있어서 사실 조마조마 했습니다. 하필이면 보험도 제일 기본만을 가입한터라 잘못하면 쌩돈이 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습니다. 그 직원은 포도 나무에 긁힌 잔기스 자국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더니 능숙한 행동으로 견적에 들어갑니다.

그녀가 청구한 금액은 무려 700 유로. 너무 큰 액수이기에 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돈을 내더라도 한 번 따져 보기로 합니다. 우선 이게 스크래치인지 기스인지 부터 개념 정리부터 들어가서 기스쪽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다음은 수리 방식에 대해 정리하기 시작해서 약바르고 헝겊으로 문지르는 방향으로 설득했습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인건비 산정 방식은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종 합의한 금액은 150 유로. 나름대로 선방했습니다만 속이 쓰립니다.


[오전 10시50분 총알 택시로 피게레스-빌라판트역 까지]
렌트카 사무실에서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여유있을 줄 알았던 열차 시간이 아슬아슬해졌습니다. 더군다나 고속열차는 이 역사가 아닌 새로 생긴 피게레스-빌라판트(Figueres-vilafant)역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셔틀 버스 이런 거 없습니다. 택시를 탔더니 총알로 달리더군요. 덕분에 열차 출발 10분 전에 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11시10분 프랑스 님 행 TGV 탑승]
피게레스에서 남부 부르고뉴까지의 거리는 약 600 Km 남짓됩니다. 적은 거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먼 거리도 아니어서 애초에는 직접 차를 몰고 가는 방안을 고려했습니다. 그런데 국경을 통과해서 차를 반납하는 경우의 수수료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거의 3000 유로가 소요된다고 해서 바로 포기했습니다. 대신, 프랑스 님(Nimes)까지는 기차를 이용하고, 님에서 다시 차를 렌트하기로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님까지의 기차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출발할 때는 완연한 스페인 풍이었던 열차 분위기는 프랑스 도시들을 지날 때 마다 조금씩 프랑스틱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풍경도, 언어도, 사람도 조금씩 변했습니다.

[오후 1시45분 프랑스 님 ]
님(Nimes)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2000년도에 한 번 여행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도시 곳곳에 산재한 로마 제국 시대의 유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만 도시를 음식으로 기억하는 저에게는 어레나(원형경기장) 주변의 조그마한 식당에서 먹었던 프랑스식 대구 매운탕의 도시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당시에는 언제 다시 오겠냐 했었는데 살다보니 이런 재회의 기회도 오는군요.

이곳에서 차를 다시 빌려 길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역 주변의 교통 상황이 심히 안 좋습니다.
사방이 공사 구간이고, 좁근 골목길에 버스 전용 차선제를 시행하지 않나, 차선 방지턱이 세로 방향으로 놓여 있어서 옆 차선으로 이동을 못하게 하질 않나... 도심을 빠져 나오는데 곤혹을 치뤘습니다. 한 번은 뛰에서 빵빵거리던 승합차가 우리차 옆으로 오더니 손바닥을 얼굴 안쪽으로 향하도록 들어 올리는 항의 자세를 취하더군요. 그 운전자를 보던 와이프가 한마디 합니다.

와이프:
"저 사람이 우리보고 멍청하다고 했어"

나:
"어떻게 알았는데?"

와이프:
"영화에서 많이 본 포즈야"
"이런 멍청한 놈들 같으니라구 할 때 나오는 포즈"
[Photo credits: Courtesy of Guido Indij/Gestiarium]
[오후 2시 30분 프랑스 아비뇽 인근 ]
사실 모든 것은 계획하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굳이 님(Nimes)에 하차한 것도, 거기서 차를 빌린 것도 모두가 다 아비뇽(Avinon) 인근의 로마 시대 수교인 퐁 뒤 가르(Pont du Gard)를 둘러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전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수로 인근에 있는 핵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난 것이지요. 방사능과 관련이 없었다는 것은 나중에 안 사실이고, 당시에는 좀 심각했습니다. 도로 통제 소식도 있고 해서 분기점에서 주저주저 하다가 그대로 통과해 버려습니다.

2000년도 여행에서는 뭘 몰라서 놓쳤었는데, 이번에는 벼르고 왔는데도 안되는군요.
아마도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Source and License: Wikimedia Commons]


[오후 5시 리옹 통과]
프랑스 고속도로 운전은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 보다도 쉽고 심리적 부담감도 없습니다.
추월 차로와 주행 차로에 대한 주행 방식이 운전자들 사이에 공통적인 룰로 자리잡혀 있기 때문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속 차량은 철저히 오른쪽 차선을 사용하고, 추월시에만 왼쪽편 차선에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 주행하던 차선으로 복귀합니다. 이 룰이 1,2 차선 뿐만 아니라 전 차선에 대해서 적용하다보니 대단히 효율적인 운행이 가능합니다.
저속 차량이건 고속 차량이건 자기가 앞차에 의해 속도를 제약받는 법도 없을 뿐 더러, 자기 때문에 뒷차가 지체되는 상황도 방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룰도 트래픽이 어느 정도 흐를때나 적용되는 얘기였습니다. 프랑스 제2의 도시라는 리옹(Lyon)이 가까워지자 여지없이 대도시 교통 정체가 나타났습니다. 이 때 부턴 백약이 무효였고 최대한 눈치껏 운전을 해야했습니다. 리옹에서 워낙 막히는 바람에 론 강을 끼고 있는 리옹 시내 전경을 천천히 관망할 수 있는 어부지리 소득도 있었지만 아무튼 많이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오후 6시 남부 부르고뉴 입성]
리옹에서 약 40분을 더 지나서 마꽁(Macon)이라는 도시에 도착하자 드디어 고속도로에서 벗어 났습니다. 이제부턴 로컬길을 타고 갑니다. 고속도로에선 느끼지 못했던 부르고뉴의 정취가 한 순간에 몸을 감싸돕니다.

아싸~~ 다왔다.







2012년 2월 26일 일요일

2011년 스페인 여행기(8) - 피게레스 달리 미술관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는 북부 국경 인근에 있는 피게레스(Figueres) 입니다. 이곳을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달리 미술관(Dalí Theatre and Museum)을 방문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학창시절 교과서나 가끔씩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는 달리의 작품을 접할때 마다 느낀 "이 사람 뭐지?"라는 호기심이 이곳을 그냥 건너뛸 수 없게 했습니다.

아침부터 서둘렀더니 개관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을 했습니다. 미술관 바로 옆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길 건너편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오픈 시간을 기다립니다.

길 건너편에서 본 미술관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웬, 달걀들?


예쁘다거나 멋있다는 수사가 어울리는 외관은 아닙니다만 매우 특이하긴 합니다.
벽에 점처럼 붙어있는게 뭔가 싶어 가까이 가봅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짓을 수용할 수 있을까

ㅋㅋ 벽에 '똥' 을 잔뜩 발라 놨습니다. 이것도 초현실주의 작가의 오브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문은 위 사진상의 벽면을 따라 쭉 내려가서 왼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매표소와 건물 출입구가 같이 있습니다.
달리가 흠모한 철학자 Francesco Pujols

드디어 입장 시간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초현실주의자 달리를 만나러 들어갑니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작은 옥외 정원이 있고, 그 안에 요상한 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1978년작 "Car-naval"


난해합니다. 캐딜락이 있고 풍만한 여인의 동상에 타이어 더미. 그리고 맨 위에는 보트가 뒤집혀져 있습니다.

이 정원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빙 둘러가며 전시실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부에서 보면 복도를 따라 한편엔 전시실이 배치되어 있고,
복도의 다른 한편으로는 아까 본 캐딜락이 있는 정원을 볼 수 있는 창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첨엔 오스카 트로피인 줄 알았다는











그 다음에는 화살표를 따라 전시실을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하면 됩니다.
그런데 확실히 여타 미술관과는 다른 뭐가 있습니다.
처음 느낌은 당혹감 그 자체, 그 다음은 감탄스러움, 마지막에는 동화되어 즐기는 느낌.
거의 모든 작품이 이 패턴으로 다가오더군요.

한쪽 구획에는 이런 그림들만 잔뜩 있습니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또 다른 구획에는 이런 그림들로만 가득합니다.
난 왜 스타워즈가 연상이 되는 것인지

그런가 하면 돌의 질감을 사용해서 사물을 표현한 그림만으로 전시된 방도 있습니다. 짐작컨대 뭔가에 필이 꼿이면 끝장을 내는 성격이었나 봅니다.
이런 그림만 한가득



메인홀의 한켠에는 링컨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니까 그림의 내용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더 가까이 보니까 나신의 여인이 바다를 보는 풍경으로 바뀝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링컨

여인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





























영락없는 여인과 바다 풍경


다음은 제일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바람의 궁전(Palace of the winds)방으로 가보겠습니다.
먼저 눈에 띄는 천장에 그린 그림. 천장을 뚫고 하늘로 비상하는 환상적인 작품입니다.
이 그림상의 두 주인공은 달리 자신과 부인인 갈라라고 하네요.
1973년작 Palace of the winds
이 방의 침실로 들어가봅니다.
말이 침실이지 억만금을 준다해도 맘편히 잘 수는 없는 그런  장치들이 가득합니다.
처음 눈에 띄는 것은 왠지 익숙한 벽에 걸린 직물 인쇄 그림.

달리의 대표작인 기억의 지속(Persistence of memory)을 이런식으로 직물에 인쇄를 해서 침실 벽면에 걸어 놨습니다. 흔히 늘어진 시계 그림이라고 알려진 이 그림의 원본은 뉴욕 MOMA에서 보관 전시 중이라고 합니다. 침대 머릿말에 자태가 아름다운 해골도 보입니다.

다음은 제가 본 침대중에 가장 강렬한 인상의 침대입니다.
포인트는 침대를 받치고 있는 다리입니다. 어떻게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당혹스럽긴 한데 점차 이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 듭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충격 작품.

첨엔 뭔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메두사의 몸통 부분을 숟가락을 엮어서 만들어놨습니다. 아~ 놔~

이 글에서 다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미술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 이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엄숙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놀이 동산에 온 듯한 느낌까지 났습니다. 당혹과 재미 사이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더군요.

이곳에 와서 알게된 사실 중 하나는,  달리가 과학과 기술을 미술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사물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전시물 중에는 여러 장의 그림을 거울과 함께 두 눈의 시야 차이를 고려한 배치를 해서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하는 작품도 있고,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달리의 3D 작품을 2D인 사진으로 보려니까 실감이 나질 않네요

마지막으로는 좀 생뚱맞은 작동 완구틱한 작품 몇 점을 보시겠습니다. 첨엔 이게 뭔가 하는 작품이 벽에 걸려 있고, 옆에 동전 투입구가 있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쪼그린 인형 같습니다.
궁금해서 동전을 넣어보니 저 인형이 서서히 움직이더니 기지개 자세로 변합니다.
유치 찬란 짬뽕

이런게 몇 개 더 있는데 다음 보실 작품은 일본풍의 연이 펼쳐지는 모습이고, 그 다음 사진은 전자회로기판을 소재로 활용한 작품입니다. 추측컨대 70년대 전자 산업의 발전 시기에 받은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 먹고 연 펼치기 신공

전자 미이라와 PCB 장신구





























사실 미술관을 들어올때만 해도 까칠한 초현실주의 화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작품을 보고 나니까 인생 참 재미있게 살았던, 그리고 또 무진장 장난끼가 많았을것 같은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달리의 전기나 한번 읽어 봐야 겠습니다.
Salvador Domènec Felipe Jacinto Dalí i Domènech





2012년 2월 16일 목요일

2011년 스페인 여행기(7) - 산 파우(Sant Pau) 레스토랑

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산 파우(Sant Pau) 얘기를 해보게습니다.
정문에서 한 컷


흔히 많이 듣는 얘기로 미슐랭 별3 짜리 레스토랑은 온전히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 그 도시를 방문할 값어치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레스토랑의 가치를 유명 관광 명소급으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뜻을 지닌, 조금은 과장된 문구 정도로 받아들였었지요.

그런데 이번 방문을 통해서 이말이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온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애초의 여행 스케쥴 상에는 산 파우 방문은 일정의 맨 앞쪽에 있었습니다.
이동 경로를 고려해야했고 다른 이벤트들과의 일정 조정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여행 4개월 전 예약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곧 깨닫고 말았습니다. 일정이 꼬이는구나...
우리가 원했던 날짜는 언감생심. 그 쪽에서 제안하는 날짜는 여정의 딱 한 가운데.

이곳을 포기하기만 하면, 바르셀로나 FC 경기를 볼 수 있고 이동 경로도 스무스해지고, 경비도 절약되는 뭐 그런 환상의 일정이 있었는데 결국 밥 한끼 먹기 위해 모든 일정을 재조정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 미슐랭의 표현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이곳은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한시간쯤되는 거리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인 산 폴 데 마르(Sant Pol de Mar)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을은 변변한 식료품 가게도 없는 한 20분이면 골목 구석 구석을 다 훝을 수 있는 그야말로 한적하다는 표현이 딱맞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곳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있다니 우리네 상권 입지 조건에 대한 기준으로는 말이 안되는 곳인 셈이죠.

식당 자체도 소박합니다. 실내의 테이블 수는 10개 남짓.
실내 모습 - 창문 너머에는 기찻길 뷰(?)
식전주로 카바(Cava) 한 잔씩을 먼저 시키고
오늘 먹을 음식 주문에 들어갑니다. 
메뉴는 12가지 코스로 서빙되는 테이스팅 메뉴를 선택했고,  와인은 화이트는 하우스 와인 2잔을 먼저 시켰고, 레드 와인으로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의 페스케라 레세르바 밀레니엄(Pesquera Millenium Reserva 2002)을 주문했습니다.
첫 코스에 앞서 서비스로 가스파초 스프를 제공합니다.
이날 날씨가 좀 더워서 땀을 흘렸더니 땀 식히고 식사하라고 이런 배려를 하는군요.
가스파초(Gazpacho) - 스페인식 냉채 스프
첫 코스는 애피타이저입니다. 모두 4 가지의 음식이 서빙됩니다.
Four small appetizers from the September micro-menu


1번 요리는 얇은 감자 시트로 싼 토끼 파테
2번은 가지로 만든 냉 다시
3번은 쿠스쿠스
4번은 치즈와 블랙베리 처트니(Chutney)

음식을 잘 보면 자색(Violet)으로 색감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리 자체는 좀 어렵네요. 옆에서 서버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긴 하는데 말은 다 알아 듣겠는데 당최 무슨 요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예 그림을 곁드린 설명지를 가져다 줍니다.
근데 스페인어 설명
메뉴 설명서를 보면 다시, 시로, 처트니 등 일본이나 인도 요리 용어등이 등장하는 점이 사뭇 색다릅니다. 맛은 뭐랄까 맛있다는 것보단 신기하다는 느낌, 그래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맛이라고나 할까요 뭐 그런 느낌으로 열심히 먹었습니다.

에피타이저로 입맛을 돋구고 드디어 첫번째 메인 요리가 등장합니다. 디쉬가 서빙되고 뚜껑이 열리는 순간 와우~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일종의 작품입니다. 일단 보시죠.
Gastronomic Mondrian
확대해서 한번 더 보면.
실제로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산 파우의 시그니처 디쉬로 손꼽히는 요리입니다. 아래 부위는 염장 대구를 스페인산 올리브 오일과 에멀전 한 것이고 위의 화려한 색상의 토핑은 후추입니다. 레드, 옐로우, 그린 페퍼를 사용한 것이지요. 맛은 대단히 오묘합니다. 짜고, 시고, 달달한 맛이 모두 섞여 있는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요리.
Tomato Velvet
요리 이름이 토마토 벨벳입니다. 이름도 참 절묘하게 짓는군요. 새우가 마치 벨벳을 연상시키는 토마토 크림속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저 장식 좀 보세요. 이것 참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어서 나오는 요리는 라비올리.
Vegetable Ravioli and Joselito ham
이 요리는 기본적으로 야채 속을 넣은 라비올리인데 피를 오이, 무, 가지 등을 사용해서 기존의 밀가루피를 대신했습니다. 라비올리 속의 부드러움과 야채피의 아삭함이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죠. 게다가 위에 올려진 것은 품질 좋기로 유명한 호세리또(Joselito) 사의 이베리코 하몽.  제 취향으로는 오늘의 베스트였습니다.

다음 요리는 이상하게 존재감이 없네요. 제목은 우스꽝스러운데 무슨 요리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메일로 문의나 해봐야 겠습니다.
Ray and Dewlap




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선 요리가 나옵니다.
Cleaver Wrasse 2011
이 생선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커리 소스에 찍어 먹었는데 잘 어울리더군요. 생선 아래쪽으로 데코레이션 되어있는 녹색의 식물은 차요테(Chayote) 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진을 보니까 요리 제목에 왜 2011을 붙였는지 급 궁금해지는군요.

계속되는 요리는 고급화된(?) 편육 요리입니다.
Boneless Pig's trotters

이 요리는 우리가 흔히 먹는 편육을 전자렌지에 과하게 데운 뒤 아몬드를 뿌려 먹는 맛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와이프를 위해 주방장 특별 메뉴가 서빙됩니다.
메뉴판에 없는 메뉴

자. 이렇게 메인 코스는 종료됩니다. 그러나 남은 코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계속 갑니다.
Cheeseboard with contrasting flavour



치즈 보드군요. 이곳은 프랑스 식당과 달리 양이 적어서 만족스럽습니다. 각종 치즈와 함께 페어링 할 수 있는 음식이 같이 나오고, 더불어서 치즈의 종류와 원산지 페어링된 음식을 기록한 작은 카드가 함께 제공됩니다.

치즈 코스를 한참 먹고 있는데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일본계 여성 매니저가 귀뜸을 합니다. 조금 있으면 주방장이 인사를 하러 홀에 나올 것이라고. 그리고 잠시 후. 우리 테이블 앞으로 카르메 루스카예다가 진짜로 나타납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여성 세프라는 루스카예다와 직접 대면을 하다니 가문의 영광이군요.
with Carme  Ruscalleda 

치즈 코스 뒤에는 본격적인 디저트 코스가 시작됩니다.
먼저 나온것은 파인애플 샤벳트.
Pineapple Sorbert

그리고 화이트 초콜릿입니다.
타일 지붕


처음에는 이런식으로 서빙됩니다. "뭐지?" 하고 있는데 타일을 들어내니까 마지막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Under a green roof tile

화이트 초콜릿과 딸기가 숨겨져 있었군요. 그래서 이 디저트 이름을  "Under a green root tile"이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자, 이렇게 디저트까지 끝났습니다만 여기까 여행의 종착지는 아닙니다. 서버는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합니다.
정원에서 본 모습 - 1층은 주방, 2층은 식당

정원에는 무진장 큰 나무가 그늘을 제공하고 있었고
그늘 아래에 있는 야외 소파에 앉아 커피와 함께 마지막 여운을 즐깁니다...

세 시간이 넘는 모든 코스를 마치니 포만감에 취기까지 더해 졸음이 물밀듯이 밀려 왔습니다. 이 상태로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무리다 싶어 이 마을에서 1박을 하기로 합니다. 마침 마을 외곽에 지중해 조망권을 가진 근사한 호텔이 있었습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마을의 작은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나가서 늘어지게 한숨 자고 있으려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더군요.
Gran Sol 호텔 객실에서 본 지중해




사실 살면서 언제 다시 산 파우를 방문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만
그들이 보여준 뛰어난 색상과 예술적인 기교, 그리고 열정을 가진 요리는 
영원히 기억속에 남을것 같습니다.
Thanks for all those dish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