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인 산 파우(Sant Pau) 얘기를 해보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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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에서 한 컷 |
흔히 많이 듣는 얘기로 미슐랭 별3 짜리 레스토랑은 온전히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 그 도시를 방문할 값어치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레스토랑의 가치를 유명 관광 명소급으로 격상시키고자 하는 뜻을 지닌, 조금은 과장된 문구 정도로 받아들였었지요.
그런데 이번 방문을 통해서 이말이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온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애초의 여행 스케쥴 상에는 산 파우 방문은 일정의 맨 앞쪽에 있었습니다.
이동 경로를 고려해야했고 다른 이벤트들과의 일정 조정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여행 4개월 전 예약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곧 깨닫고 말았습니다. 일정이 꼬이는구나...
우리가 원했던 날짜는 언감생심. 그 쪽에서 제안하는 날짜는 여정의 딱 한 가운데.
이곳을 포기하기만 하면, 바르셀로나 FC 경기를 볼 수 있고 이동 경로도 스무스해지고, 경비도 절약되는 뭐 그런 환상의 일정이 있었는데 결국 밥 한끼 먹기 위해 모든 일정을 재조정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 미슐랭의 표현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이곳은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한시간쯤되는 거리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인 산 폴 데 마르(Sant Pol de Mar)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을은 변변한 식료품 가게도 없는 한 20분이면 골목 구석 구석을 다 훝을 수 있는 그야말로 한적하다는 표현이 딱맞는 그런 곳입니다. 이런곳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 있다니 우리네 상권 입지 조건에 대한 기준으로는 말이 안되는 곳인 셈이죠.
식당 자체도 소박합니다. 실내의 테이블 수는 10개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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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모습 - 창문 너머에는 기찻길 뷰(?) |
식전주로 카바(Cava) 한 잔씩을 먼저 시키고
오늘 먹을 음식 주문에 들어갑니다.
메뉴는 12가지 코스로 서빙되는 테이스팅 메뉴를 선택했고, 와인은 화이트는 하우스 와인 2잔을 먼저 시켰고, 레드 와인으로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의 페스케라 레세르바 밀레니엄(Pesquera Millenium Reserva 2002)을 주문했습니다.
첫 코스에 앞서 서비스로 가스파초 스프를 제공합니다.
이날 날씨가 좀 더워서 땀을 흘렸더니 땀 식히고 식사하라고 이런 배려를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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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파초(Gazpacho) - 스페인식 냉채 스프 |
첫 코스는 애피타이저입니다. 모두 4 가지의 음식이 서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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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r small appetizers from the September micro-menu |
1번 요리는 얇은 감자 시트로 싼 토끼 파테
2번은 가지로 만든 냉 다시
3번은 쿠스쿠스
4번은 치즈와 블랙베리 처트니(Chutney)
음식을 잘 보면 자색(Violet)으로 색감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리 자체는 좀 어렵네요. 옆에서 서버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긴 하는데 말은 다 알아 듣겠는데 당최 무슨 요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예 그림을 곁드린 설명지를 가져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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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스페인어 설명 |
메뉴 설명서를 보면 다시, 시로, 처트니 등 일본이나 인도 요리 용어등이 등장하는 점이 사뭇 색다릅니다. 맛은 뭐랄까 맛있다는 것보단 신기하다는 느낌, 그래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맛이라고나 할까요 뭐 그런 느낌으로 열심히 먹었습니다.
에피타이저로 입맛을 돋구고 드디어 첫번째 메인 요리가 등장합니다. 디쉬가 서빙되고 뚜껑이 열리는 순간 와우~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일종의 작품입니다. 일단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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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stronomic Mondrian |
확대해서 한번 더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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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
산 파우의 시그니처 디쉬로 손꼽히는 요리입니다. 아래 부위는 염장 대구를 스페인산 올리브 오일과 에멀전 한 것이고 위의 화려한 색상의 토핑은 후추입니다. 레드, 옐로우, 그린 페퍼를 사용한 것이지요. 맛은 대단히 오묘합니다. 짜고, 시고, 달달한 맛이 모두 섞여 있는 맛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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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ato Velvet |
요리 이름이 토마토 벨벳입니다. 이름도 참 절묘하게 짓는군요. 새우가 마치 벨벳을 연상시키는 토마토 크림속에 빠져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저 장식 좀 보세요. 이것 참 어떻게 먹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어서 나오는 요리는 라비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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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getable Ravioli and Joselito ham |
이 요리는 기본적으로 야채 속을 넣은 라비올리인데 피를 오이, 무, 가지 등을 사용해서 기존의 밀가루피를 대신했습니다. 라비올리 속의 부드러움과 야채피의 아삭함이 조화를 이루게 만들었죠. 게다가 위에 올려진 것은 품질 좋기로 유명한 호세리또(Joselito) 사의 이베리코 하몽. 제 취향으로는 오늘의 베스트였습니다.
다음 요리는 이상하게 존재감이 없네요. 제목은 우스꽝스러운데 무슨 요리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메일로 문의나 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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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 and Dewlap |
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선 요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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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ver Wrasse 2011 |
이 생선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커리 소스에 찍어 먹었는데 잘 어울리더군요. 생선 아래쪽으로 데코레이션 되어있는 녹색의 식물은 차요테(Chayote) 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진을 보니까 요리 제목에 왜 2011을 붙였는지 급 궁금해지는군요.
계속되는 요리는 고급화된(?) 편육 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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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eless Pig's trotters |
이 요리는 우리가 흔히 먹는 편육을 전자렌지에 과하게 데운 뒤 아몬드를 뿌려 먹는 맛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와이프를 위해 주방장 특별 메뉴가 서빙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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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에 없는 메뉴 |
자. 이렇게 메인 코스는 종료됩니다. 그러나 남은 코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계속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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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seboard with contrasting flavour |
치즈 보드군요. 이곳은 프랑스 식당과 달리 양이 적어서 만족스럽습니다. 각종 치즈와 함께 페어링 할 수 있는 음식이 같이 나오고, 더불어서 치즈의 종류와 원산지 페어링된 음식을 기록한 작은 카드가 함께 제공됩니다.
치즈 코스를 한참 먹고 있는데 우리 테이블을 담당했던 일본계 여성 매니저가 귀뜸을 합니다. 조금 있으면 주방장이 인사를 하러 홀에 나올 것이라고. 그리고 잠시 후. 우리 테이블 앞으로 카르메 루스카예다가 진짜로 나타납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여성 세프라는 루스카예다와 직접 대면을 하다니 가문의 영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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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Carme Ruscalleda |
치즈 코스 뒤에는 본격적인 디저트 코스가 시작됩니다.
먼저 나온것은 파인애플 샤벳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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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eapple Sorbert |
그리고 화이트 초콜릿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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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 지붕 |
처음에는 이런식으로 서빙됩니다. "뭐지?" 하고 있는데 타일을 들어내니까 마지막 서프라이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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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a green roof tile |
화이트 초콜릿과 딸기가 숨겨져 있었군요. 그래서 이 디저트 이름을 "Under a green root tile"이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자, 이렇게 디저트까지 끝났습니다만 여기까 여행의 종착지는 아닙니다. 서버는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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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본 모습 - 1층은 주방, 2층은 식당 |
정원에는 무진장 큰 나무가 그늘을 제공하고 있었고
그늘 아래에 있는 야외 소파에 앉아 커피와 함께 마지막 여운을 즐깁니다...
세 시간이 넘는 모든 코스를 마치니 포만감에 취기까지 더해 졸음이 물밀듯이 밀려 왔습니다. 이 상태로 바르셀로나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무리다 싶어 이 마을에서 1박을 하기로 합니다. 마침 마을 외곽에 지중해 조망권을 가진 근사한 호텔이 있었습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마을의 작은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나가서 늘어지게 한숨 자고 있으려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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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 Sol 호텔 객실에서 본 지중해 |
사실 살면서 언제 다시 산 파우를 방문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만
그들이 보여준 뛰어난 색상과 예술적인 기교, 그리고 열정을 가진 요리는
영원히 기억속에 남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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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s for all those dish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