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31일 일요일

2010년 보르도 여행기(4) - 생 테밀리옹 이야기

사실 이곳을 들르기로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생 테밀리옹(Saint Émilion)은 그저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이라던가 샤토 오존(Chateau Ausone)등 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유서 깊은 와인 산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이 마을과, 바로 옆 마을인 포므롤(Pomerol)의 와이너리나 구경할 생각으로 하루 쯤 묵기에 적당한 호텔을 알아보고 있던 중, 이 마을이 통째로 1999년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갑자기 호기심이 급 상승하면서 이곳에서 2박을 묵기로 계획을 급 변경합니다. 호텔 예약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마도 시간이 촉박한데다 주말을 끼고 있어서 그랬지 싶습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는 전부 방이 없다고 나오는 통에 직접 호텔에 연락했더니 별관에 남이 있는 방이 있는데 쓰겠냐고 합니다. 그땐 무슨 얘긴지 했었는데 도착해 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호텔의 메인 건물과 완전히 독립적인 2층 짜리 건물의 키를 내어줍니다.


숙소 베란다에서 본 거리 모습
짐을 풀고 슬슬 동네 구경을 떠나봅니다. 좁고 구불 구불한 돌길은 마치 시간을 거스르는 느낌을 줍니다.
보기보단 무지 가파릅니다 - 하이힐은 재앙
이 동네는 신축이나 개축을 할 때도 반드시 석회암을 사용하고, 색상을 일치시키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덕분에 2010년 오늘 날에도 1,000년도 더 된 마을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숙소가 있는 쪽에서 마을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벨 타워쪽의 풍경을 보면 이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벨 타워 주변엔 5성 호텔, 미슐랭 식당, 관광 안내소, 노천 카페가 있어요
마을 어디를 봐도 한결 같은 분위기를 자아 냅니다.

보르도시의 건축물들도 이곳 화강암으로 지었대요
한편 마을 바깥 쪽으로 눈을 돌리면 포도밭으로 둘러쌓고 외곽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저 멀리 남쪽엔 도르도뉴 강이
샤토 밀집도가 꽤 높아요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우선 골목 골목마다 위치한 와인샵들이 눈에 띕니다. 와인 리스트를 얼핏 보니 고급 와인들이 빈티지까지 완벽하게 갖춘채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문을 하면 항공편으로 집까지 배달을 해준다고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자기네 와인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설레발이 재미있습니다.
한국으로는 안되겠지요
그 밖에 공예품 가게, 전시장 등 볼거리도 꽤 있었고,  마카룽 가게, 카페, 바, 레스토랑 등먹고 쉴 환경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전통 마카룽은 생각보단 별로
그런데 진짜 생 테밀리옹을 보려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소위  ‘겉’ 모습에 관한 것이었고, 나머지 반쪽에 해당하는 ‘속’ 모습은 지하에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벨 타워가 서 있는 땅 지하에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모놀리식(Monolithic) 교회가 그 주인공입니다.
입구로 가려면 급 비탈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와야
모놀리식이란 단일 (화강암) 석재를 말합니다. 보통의 건축물은 벽돌이나 가공된 돌을 차곡차곡 쌓아서 건물을 완성하는데 반해서, 모놀리식은 거대한 암석을 안에서부터 파내면서 건물을 완성하는 구조입니다.
문을 들어가면 사진 찰영은 금지
이쯤에서 잠시 역사 공부를 하겠습니다. 가이드의 설명을 요약하면:
  • 8세기 중반 에밀리옹(Emilion)이라는 수도승이 이 지역에 정착하여,
  • 암석에 동굴을 파고 은둔 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삶을 살자,
  • 그의 선행을 따라고자 하는 수도승들이 이 지역세 집결하여 그를 따르기 시작함.
  • 에밀리옹이 죽자 그를 성자(Saint)라 부르고 마을을 생 테밀리옹으로 명명.
  • 후세 은자들이 기적을 행하자 더 많은 사람과 수도승이 집결하면서 번성함.
  • 12세기에는 더 이상 밀려드는 사람을 수용하지 못해 요새화가 됨 (성벽과 타워).
  • 11~13세기에 에밀리옹의 초기 동굴을 확장해서 지금의 모놀리식 교회를 완성.
  • 13세기부터 영/불간 전쟁에 휩쓸려 양측 모두의 약탈의 대상이 되면서 황폐화.
  • 19세기 중반까지 방치되다가 이후 와인 산업이 뜨면서 다시 각광을 받음.
가이드를 따라 좁고 가파른 지하 동굴의 층계를 내려가니 수도승 에밀리옹이 살았다는 작은 공간이 나옵니다. 작은 샘물이 나는 공간도 있고, 수행하던 기도실, 침실과 의자터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한쪽 끝자락에 나무로 된 문이 있길래 물어보니까 어처구니 없게도 그 문 뒷 공간은 와인샵이라고 합니다. 하마터면 귀중한 문화 유산이 와인 창고로 쓰일 뻔한 것이었지요.

에밀리옹의 거처에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출입구로 들어가니 모놀리식 교회로 연결됩니다.  도저히 이곳이 단일 석재라는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생각보다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닥 면적은 60x20 미터 정도되고 높이도 10 미터를 상회하더군요. 커다란 예배실과 선택받은 자의 무덤이 있었고 예배당 천장에는 트리티니 조각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꽤 충실하게 이곳 저곳을 설명해 줍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돔형 천장과 그 주변 기둥을 온갖 서포터로 지지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얘기인즉슨 이 지하 교회 바로 위에는 벨 타워와 5성 호텔이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벨 타워의 무게 중심이 지하 교회 돔 아치의 무게 중심과 일치하지 않는 바람에 하중 분산에 문제가 발생해서 이런식으로 임시 조치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투어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밀을 공유한 사이처럼 동네의 모든것이 새롭게 보이는군요.
사연이 많은 동네였구나...
어둠이 내리자 마을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상점이나 카페는 문을 닫는 대신 레스토랑이 일제히 불을 켭니다.  굳이 식사 생각이 없다가도 좁다란 골목을 타고 퍼지는 음식 향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치명적인 마력을 발휘합니다. 한국에서의 프랑스 요리는 웬지 고고하고 까탈스러운 느낌을 받곤 했었는데, 이곳에 오니까 가정식 백반처럼 친근함으로 다가 옵니다.

7시30분쯤 되니까 사람들이 식당으로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첫날인 오늘은 사람들이 제일 북적거리는 식당을 선택해 봅니다.  토요일 저녁 시간이라 자리가 모자라 보였는데 곧 능숙한 솜씨로 야외 테라스에 공간을 마련해서 식탁을 차려 줍니다.
요로큼 생겼지요
제가 메인 요리로 선택한 것은 Veal 이라고 부르는 어린 송아지로 만든 요리입니다. 생후 4개월 미만의 도축된 송아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직 고기 색깔이 빨갛게 변하기 전 단계입니다. 당연히 더 연하고 섬세하며 지방이 없습니다. 소스와의 조화도 훌륭합니다. 먹는 내내 어쩜 이런 맛이 나올까 감탄하면서 아껴 먹었습니다.
veal은 16주 미만 송아지, calf는 5개월 이상된 송아지, beef는 어른소
와이프의 메인 요리는 Maigre 라고 부르는 생선 요리였는데, 처음으로 먹어 본 맛이었습니다. 맛이 하도 인상적이길래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으면 다시 먹어볼까 해서 생선 이름(Maigre)를 적어 왔습니다. 구글링을 해보니까 프랑스 여행 중에 맛을 본 사람들이 자기네 나라로 돌아와서 이 생선을 찾고 있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게 뭔지 아무도 - 프랑스인도!!! -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프랑스 요리 전문가가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았는데 그에 따르면 지중해산 농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생선 이름이라는게 지방마다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경우가 많아서 혼란이 생긴다는 설명과 함께.

물론 와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지역 와인인 샤토 트라포(Chateau Trapaud) 2001년산을 한병 깠습니다. 멜롯 70%, 카베르네 쇼비뇽 20%, 카베르네 프랑 10%가 함유된 와인이었는데 생각보다는 묵직하고 알코올맛도 강한 편이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테라스에서의 저녁 식사가 모두 끝났습니다. 조그마한 식당에서 비교적 간단한 코스 메뉴를 먹었는데도 2시간을 훌쩍 넘겨 버립니다.
디저트는 마카룽으로
둘째 날의 저녁은 Le Clos du Roy 라는 식당에서 했습니다.  원래 이 날의 계획은, 저녁은 최대한 가볍게 때운 후 시간을 확보해서 밤에는 야경이나 구경하면서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마을 중심지에서 좀 떨어진 없어 보이는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밖에서 보니까 내부에 테이블도 몇개 없고, 골목길에서 삐끼질 하고 있던 쥔장도 검소(?)하게 생겼길래 이거다 하면서 들어갔습니다.
수수한 외관
그리고 나서 1분. 우리의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이런... 넓직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홀이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주 제대로 된 레스토랑을 고른 것입니다. 가벼운 저녁의 계획은 사라지고 또 다시 만찬을 즐겨야 하나 봅니다. 이렇게 된 이상 뭐 즐기는 수 밖에요. 오늘은 아예 식전주(아페르티보)부터 시작해봅니다.
아싸. 또 먹어보자
오늘의 와인은 소믈리에에게 부탁해 보기로 합니다. 여기 소믈리에는 아주 별종입니다. 행동이 나무늘보와 한판 겨뤄도 전혀 밀리지 않을 만큼 느림보입니다.  게다가 웃음기 없는 얼굴에 항상 거만한 표정을 하고 다녀서 우리가 건방진 소믈리에라고 별명을 붙여 줬습니다. 그런데 와인에 대해서는 도사십니다. 와인 리스트를 꿰뚫고 있으면서 줄줄 읖조리는데 도무지 막힘이 없습니다. 오늘은 이 친구의 추천 와인 중의 하나인 클로 데 자코뱅(Clos des Jacobins) 2006 을 먹어 보기로 합니다.  완전 슬로우모션으로 디캔팅 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더니 와인의 밸런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품종을 물어 보니까 ‘멜롯’이라고 한 마디를 하고선 씨익 웃는군요. 소믈리에의 자긍심이란…
멜롯 75%, 카베르네 프랑 23%, 카베르네 쇼비뇽 2%
휘돌리기가 정말 잘 되던 잔
요리는 기대 이상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음식에 대한 철학은 ‘모든 음식은 평등하다’ 였습니다. 음식은 곧 문화이고, 문화는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최적화되도록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 것이 좋고 나쁜게 없다는게 제 지론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식사를 하다보니  ‘프랑스 음식은 우월하다’라고 생각이 변하는 듯 합니다.  다른건 몰라도 기교와 다양성을 따라갈 요리가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시작은 푸아그라로 시작해서 새우 샐러드로 연결 됩니다. 생선 요리는 도미를 내어 주는데 곁드려 나오는 가니시(Garnish)가 오히려 인상적이었습니다.
구운 배추에 발사믹은 누구 생각이었을까
오늘의 메인은 오리 구이와 카네로니(Canelloni)입니다. 처음엔 담백한 식감과 달달한 풍미에 ‘이게 오리가 맞아?’ 할 정도로 감탄스러웠고,  씹을수록 되살아나는 원래 고유한 오리의 맛이 뒷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아... 보고 있으면 향기가 난다
디저트로는 치즈 모듬과 마카룽입니다.
디저트는 계속 마카룽으로만 달립니다
주체못할 포만감으로 식당을 나와, 인적이 끊긴 길을 따라 호텔로 가면서 생각해 봅니다. 
"살라고 먹는 것도 아니고, 먹을라고 사는 것도 아니다. 주니까 먹는 것이다…"
아름다운… 그러나 너무 배부른…생 테밀리옹의 밤입니다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2010년 보르도 여행기(3) - 샤토 린쉬 바주 투어

오늘 투어를 할 와이너리는 샤토 리쉬 바주(Chateau Lynch Bages)입니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날에야 허겁지겁 투어 신청을 한 후 공항에서 겨우 확약 메일을 받아 예약에 성공한 샤토지요. 보통 이름난 샤토 투어는 주말이나 수확철에는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곳은 예외인가 봅니다.

포이악(Pauillac)의 한가로운 시골길을 달리다보니 저 멀리서 샤토의 모습이 보입니다.
설레이는 순간
영어로 진행되는 오전 11시 투어에는 모두 5팀이 참석을 했는데 전부 국적이 달랐습니다. 대기실에 들어가니 예약자 명단이 걸려 있습니다.
내 이름도 있지요
올해의 경우 포도 수확이 이틀 후부터 시작되는터라 오늘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는 모양입니다. 비교적 여유있는 일정으로 샤토 구석 구석을 보여 줬습니다. 대기실에 전체 샤토의 조감도를 볼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안쪽 전원은 주인장 사적 공간
처음으로 안내한 곳은 수확한 포도를 걷어들이는 출입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이 과정부터 보여준 곳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실은 경운기가 도착하면 바로 이 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포도를 쏟아 붓는다고 합니다.
영국 사람들이 젤 들이댑니다
포도 송이가 아래에 쌓이게 되면 다음엔 줄기 제거기(Destemmer)가 이를 받아 알갱이를 골라내고, 바로 옆칸의 파쇄기(Crusher)로 넘겨줍니다.
이런 장치를 통해 가지가 제거된 후 파쇄기로 고고
파쇄된 포도들은 파이프라인을 통해 온도 조절 장치가 구비된 스테인리스 발효조로 옮겨져서 1차 발효에 들어가게 됩니다. 2차 발효인 젖산 발효도 일부 기간만이 오크 배럴에서 진행될 뿐 상당 기간은 스테인리스 발효조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발효조가 비워있는 기간은 연간 3개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품종별로 밭별로... 따로 따로 발효해요
다음은 숙성실의 모습입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리쉬 바주는 3개의 다른 배럴 제조사로 부터 오크통을 공급 받아 사용하고 있는데 회사 마다 품질이 조금씩 틀리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품종간의 블렌딩도 물론 중요하지만 다른 오크통간의 블렌딩도 신경써야 한다고 하네요. 이 과정을 간과하면 와인 품질의 일관성을 잃게 되는 것이겠지요.
와인 공정은 은근히 까탈스러워요
그 밖에 알부민 얘기, 숙성 기간에 대한 얘기, 품종 비율에 대한 얘기 등 이런 저런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특별한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번으로 안내된 방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구경을 하게 됩니다.

여기는 1970년대까지 실제로 사용하던 양조 설비를 전시해 놓은 방입니다. 우선 목조 발효조입니다. 아직까진 특별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보던 목조 발효조입니다.
여기다가 와인을 어떻게 담았을까요
그런데 계단을 통해서 2층으로 올라가니까 놀라운 광경이 나타납니다. 바로 직전에 봤던 목조 발효조의 상단 부분의 작업 공간으로 안내된 것입니다. 사진 왼편의 뚜껑이 아까 1층에서 봤던 목조 발효조의 윗뚜껑이 되겠습니다. 이곳으로 포도를 넣고, 젓고, 이스트 첨가, 불순물 제거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 이거였어
그러면 이 2층까지는 포도를 어떻게 옮겨 왔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것도 바로 설명을 해줍니다. 도르레를 사용해서 수확한 포도를 바구니에 담아 이곳으로 끌어 올렸다고 하네요.
머리를 쓰자
다음은 줄기 제거하고 파쇄기로 짓눌러서 흐물흐물하게 만들어서 바구니에 담는 과정입니다.
옛날 방식의 디스테머(Destemmer)
이쪽은 출구
이런식으로 파쇄된 포도는 레일을 타고 발효조로 가져가서 부어 버립니다.
레일 !!!
발효가 된 와인은 다시 레일로 옮겨서 압착기를 통해 즙으로 걸러내면 에이징 단계 직전의 와인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웬지 프랑스인에게는 영어가 껌일것 같다는... 발음이 우월(?) 하니까

자, 다음은 입이 즐거운 시간입니다. 모두 기대를 한아름 갖고 시음장으로 향합니다. 오늘 시음할 와인은 샤토 리쉬 바주(Chateau Lynch Bages)와 세컨드 와인인 샤토 오 바주 아베루(Chateau Haut-Bages Averous) 입니다. 둘 다 2004년산을 꺼내 오는군요. 원래 최소 10년을 지나고 먹는 와인이기 때문에 아직 맛이 강합니다. 역시 시음장에서는 완성된 와인을 맛보는게 아니라 포텐셜을 잡아 내라는 성현이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안주는 안줘요
시음을 끝으로 견학 프로그램은 모두 끝났습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뜻밖에 아기자기한 마을이 나타납니다.  나름대로 잘 갖춰진 식당과 기념품 가게, 와인 판매점은 여행자의 발길을 그대로 돌아가게 놔두지를 않습니다. 발길은 저절로 기념품 가게로 향합니다.
바쥬 빌리지에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선물거리 몇 개랑 2002년산 샤토 린쉬 바주 한 병을 구매했더니 지출이 꽤 됩니다. 투어 프로그램이 저렴했던 이유가 다 있었던 겁니다.
2002년 빈티지는 80 유로
한켠을 보니 신의 물방울 프랑스판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잘 팔리나?
이렇게 해서 와이너리 투어를 모두 마쳤습니다. 영어로 진행해주니 한결 편했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공통의 흥미거리를 체험하는 재미도 쏠쏠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수확 직전이라 우람하네요



2010년 보르도 여행기(2) - 강의 왼편에서 와인을 만나다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보르도의 와인 산지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 보르도(Bordeaux)는 일종의 성지같은 곳입니다. 누구나 처음에 와인을 입문했을 때 듣게 되는 이름이 보르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메독(Medoc) 지구는 조금 더 특별한 설레임이 있는 곳입니다. 바로 보석과 같은 와인 산지가 이곳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날인 오늘은 지롱드(Gironde)강의 왼쪽 지역(Left bank)에 위치한 생 테스테프(St-Estephe), 포이악(Pauillac) 그리고 생 줄리앙(St-Julien) 마을을 돌아 보기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애초에는 현지의 투어 프로그램을 활용할 생각을 했었으나 구글링을 해본 결과, 가격이 저렴한 상품은 제가 원하는 경로가 나오지를 않았고 좀 괜찮다 싶은 것은 비용이 높을 뿐 아니라 예약이 진작에 마감되어 버려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이즈음이 시기적으로 별로 좋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9월 말은 포도 수확을 한참 하는 시기로서 많은 샤토들이 방문객을 일시적으로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말은 거의 대부분의 샤토가 문을 닫는 다는것도 나중에 알았으며 무엇보다고 좀 이름있다고 하는 샤토들은 사전 예약이 한참 전에 끝난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샤토에 투어 신청을 하고 그 중에서 2군데서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바로 샤토 린쉬 바주(Chateau Lynch Bages)와 샤토 팔메(Chateau Palmer)가 그 곳입니다. 그래서 이 두 곳은 투어를 하면서 찬찬히 살펴보고 나머지 와이너리에서는 샤토 위주로 사진 찍기 놀이나 해야 겠다고 작전을 짭니다.

토요일 아침 답게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포이악 마을로 들어 섰습니다.  우선 들려야 하는 곳은 인포메이션 센터입니다. 지롱드강 선착장 주변에 위치한 이곳에서 이런 저런 정보와 지도를 얻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생각보단 개별 마을의 규모가 크질 않고, 마을과 마을도 백투백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이동하느라 시간을 뺏길것 같지도 않습니다.
직원 친절하고, 기념품도 좋아요
오전에는 샤토 린쉬 바주 투어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투어 마지막  순서는 시음을 하는 과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원래 시음때는 맛만 보고 나머지는 뱉어 내야 하는데 하다보면 그게 잘 안지켜집니다. 대낮부터 알딸딸해진 상태로 운전하기가 뭐해서 일단 끼니부터 해결하고 움직이기로 합니다.

오늘의 점심은 초간편식입니다. 가게에서 빵과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서 오전에 봐 둔 지롱드강가 옆의 작은 야영장으로 향합니다. 이곳에 오니 RV 캠핑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처럼 간단하게 먹거리를 싸와서 소풍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지롱드강은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전혀 운치가 없습니다. 지형 영향 때문인지 강의 색깔이 온통 진흙빛입니다. 누군가 강의 색깔은 하늘을 닮는다고 말했다던데 아마도 그 사람은 여기를 안와본 것일 테지요.
하늘 따로, 강 따로
강 바람을 쐬며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마을 탐방에 들어갑니다.  확실히 프랑스의 포도밭은 앞서 본 스페인의 그것에 비해서 우월한 비쥬얼을 갖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좀 횡하니 거칠은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곳은 오밀 조밀하고 아기자기한 것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낮은 구릉지대는 이곳의 특징

생 테스테프(Saint-Estephe) 마을
생 테스테프는 오늘 둘러보는 마을 중에 제일 북쪽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좀 심하게 적막한 이 마을은 너무 조용하다 못해 사람이 사는 마을인가 싶을 정도 였습니다.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마을 중심에 위치한 메종 두 뱅도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오직 마을 광장 한쪽 벽에 그려진 지도만이 우리를 반겨 주었습니다.
지도만 덩그러니
맨 먼저 찾은 곳은 포이악과 남쪽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는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Chateau Cos d’Estournel)입니다. 이곳은 보르도 샤토 중에 가장 특색있는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고딕식도 아니고 그리스식도 아닌 양식에 밝은 연한 노란색 빛이 나는 건물 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립자의 인도 취향이 반영된 스타일
바로 인근에는 개성 강한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라퐁 로쉐(Chateau Lafon Rochet)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척보는 순간 라벨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노란색이 매력적인
라벨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보너스로 병 스케치한거 보여 드립니다.
라벨은 미완성

이제부턴 정식 도로가 아니고 ‘밭 사이로 막가’입니다. 이 와중에 짠 하고 등장한 샤토 몽로즈(Chateau Montrose). 한쪽면은 강을 보고 있고, 반대쪽 밭은 구릉에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복받은 곳으로 알려져있죠.
여기 와인 좋아하시눈 분 많던데
이 마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와이너리인 샤토 칼롱 세귀(Chateau Calon Segur)은 마을의 북쪽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칼롱에 있다’라는 주인장의 명구와 하트 모양의 라벨덕에 웬지모를 친근감을 느끼는 와인입니다.
"…but my heart is in Calon"

포이악(Pauillac) 마을
드디어 포이악으로 들어섭니다. 메독에서도 가장 호기심을 자극했던 바로 그 마을. 그랑 크뤼 클라세 특1등급 와인만 3개를 가지고 있는 전설의 마을입니다.

생 테스테프에서 포이악으로 내려오다보면 샤토 무통 로쉴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간판이 보입니다. 바롱 필립 드 로쉴드에 의해 1973년에 기어코 전설을 만들어낸 집념의 샤토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듯 했습니다....만...아쉽게도 현재는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라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샤토는 공사 중 - 재오픈하면 박물관 먼저...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매우 우월해(?) 보이는 밭이 나타나고 위엄있는 울타리로 둘러싼 샤토 라피트 로쉴드(Chateau Lafite  Rothschild)가 보입니다. 18세기에 프랑스 왕궁에 와인을 공급함으로써 보르도 와인이 고급 와인으로 인정 받게 된 선구자적 역할을 한 맏형에 해당하는 와이너리입니다.
주변이 통째로 도도하더라는
약간 더 밑으로 내려오면 이름이 길어서 힘든 샤토가 납니다. 바로 샤토 피숑 로그빌 콩테스 드 라랑드(Chateau Pichon Longueville de Lalande). 와인도 알아주는 와인이긴 하지만 샤토도 말 그대로 그야말로 ‘성’입니다.
진정한 '샤토'는 여기가 아닌지
여기서 강쪽으로 넓게 펼쳐진 밭을 바라보면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풍경이 나타납니다. 크지는 않지만 강렬한 느낌의 첨탑과 오래된 수령의 밭. 바로 엄청 강한 넘.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입니다.
탑은 1620년에 새로 지은거

생 줄리앙(Saint-Julien) 마을
강렬했던 포이악의 기억을 뒤로 한 채 다음 인접 마을인 생 줄리앙으로 향합니다. 처음 만나는 와이너리는 샤토 레오빌 푸아페레(Chateau Leoville Poyferre) 입니다
차타고 가면서 찰칵
익숙한 이름의 푯말을 따라서 강 반대 방향으로 깊숙히 들어갔더니 한국에 많이 알려진 샤토 탈보(Chateau Talbot)가 나옵니다.
베이슈벨과 탈보 가는 길
탈보네 밭이에요
다시 메인 도로로 돌아와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멋진 건물이 나오는데 이름이 샤토 란고아 레오빌 바통(Chateau Langoa Leoville Barton)입니다. 그러고보니 생 줄리앙 마을에는 유난히 레오빌(Leoville)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샤토가 많이 있습니다. 자료를 좀 찾아보니 원래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던 와이너리였는데 프랑스 혁명 직후 이리저리 쪼개져서 지금과 같이 좀 복잡한 족보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이리시 소유
이런식으로 와이너리 찾기 놀이를 하면서 메독의 3개 마을 순례를 마쳤습니다. 마지막 남은 마을인 마고는 월요일날 샤토 팔메를 방문하면서 들려볼 생각입니다.

예전에 나파밸리 방문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렇게 눈도장을 한번씩 찍어 놓는 것이 나중에 와인을 기억하는데는 확실이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몇 년전부터 보르도에 한번 와볼려고 출장이나 컨퍼런스 기회를 노리다 다 실패하고 올해 스페인 여행하는 끝자락에 이곳을 집어 넣은 것인데 나름대로 좋은 선택을 한 것 같아 괜시리 뿌듯해지는군요.
얘가 보이면 들려보세요. 시음이 죄다 꽁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