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2010년 스페인 여행기(9) - 마르케스 데 리스칼 호텔에서 식사

원래부터 계획된 식사는 아니었습니다. 와이너리 투어가 시작되기 전 안내 직원에게 몇 마디 건넨게 발단이었습니다.

"혹시 이 와이너리에 점심 먹을 데 있어?"
"와이너리엔 없고 옆에 호텔에 식당이 있는데 먹고 싶으면 얘기해. 예약해 줄께"
"그럼 와이너리 투어 끝나면 배고플테니 예약 좀 해줘"
"알써. 투어 끝나고 이리로 와"

투어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니 다른 직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네요. 바로 옆 호텔이지만 철저하게 출입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직원이 열어 준 문을 통해 호젓한 길을 따라 걷다보니 이런 건물이 보입니다.
범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집니다
좀 더 가까이 가보니 오~~ 이건 놀라운데요.
곡선과 빛의 걸작
이 건물은  빌바오(Bilbao)의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라고 하는 유명한 건축가의 역작이라고 하는군요. 와이너리측에서 어마어마한 돈과 노력과 와인(?)을 동원해 게리를 설득한 끝에 한적한 라 리오하의 작은 마을 엘시에고(Elciego)에 이러한 멋진 건축물을 유치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티타늄 소재의 지붕
이 창의력 만빵의 건축물은 Starwood 호텔 체인의 명품 브랜드인 "Luxury Collection"의 이름을  단 5성급 호텔로 사용 중입니다(http://www.hotel-marquesderiscal.com/en). 건물 1층에는 로비와 멋진 와인바가 있구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면 바로 식당으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멋진 유리 복도를 통해서는 스파가 있는 부속 건물로 연결이 됩니다.
스파는 본관 2층에서 바로 연결

사실 가벼운 식사를 원한 것이었는데 졸지에 럭셔리 정찬을 하게 생겼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거 즐기기로 합니다. 와이프와 같이 티에라(Tierra menu)라고 명명된 일종의 테이스팅 메뉴를 주문했습니다. 여기 시스템은 음식 주문 담당, 와인 주문 담당, 서빙 담당, 요리 설명 담당이 분업화 되어 있습니다. 직원들이 하나같이 영어도 잘하는군요.

와이너리 투어를 하면서 와인 시음을 과하게 한터라 가볍게 먹을 요량으로 화이트 와인 한잔씩을 주문해 봅니다.  역시 자기네 와인인 핀카 몬티코(Finca Montico)를 내어 줍니다. 적절한 산도가 텁텁한 입안을 개운하게 해줍니다.

처음 서빙된 음식은 참깨를 얹은 치즈 테린입니다. 이 지방 고유의 치즈라고 하는데 염소젓인지 소젓인지는 모르겠습니다.
Cheese terrine square with sesame
곧 이어서  닭고기로 속을 채운 크로켓. 따뜻한 음식입니다.
Croquettes
그리고 초리쪼를 넣은 완두콩 스튜가 서빙됩니다.  제가 초리쪼를 보고 반가워 하니까 서빙 하시는 분이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같이 나오는 고추 피클도 별미 였습니다.
Stew of the Day
탐색전이 끝났습니다. 요리가 전체적으로 지역색이 강한 메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됩니다.

첫번째 메인 요리는 피쉬 소스를 곁드린 아귀와 대합조개, 버섯 요리입니다. 이 대목에선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섬세하고 조화로운 맛을 낼 수 있을까요?  웨이터가 와서 맛이 어떤지를 자꾸 물어 봅니다. 맛을 표현하는 형용사 표현 공부를 다시 해야 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Monkfish with clams and "Boletus Edulis" mushrooms
앗, 와인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는 강한 레드 와인으로 한 잔 달라고 했더니 마르케스 데 리스칼  그란 레세르바 2001년 빈티지를 넉넉히 따라 줍니다. 좀전 와이너리 투어에서 같은 와인의 레세르바 2005년 빈티지를 마셨는데 그 때는 이런 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2001년은 확실히 깊고 조화로운 맛을 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일 만족스러운 와인 경험입니다. 와인의 깊은 맛은 마치 우리가 잘 만들어진 찌게나 전골 먹을 때 느끼는 깊은 맛과 등가의 경험인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서빙되는 메인은 송로 버섯을 얹은 미트볼입니다. 이건 와이프가 못먹는 재료인 관계로 제가 두 접시를 다 처리합니다.
Meat balls with truffle
이렇게 메인을 마치고 마지막 순서를 기다립니다. 치즈 케익과 샤벳이 나오는군요.
Fresh cheese cake
입가심으로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2시간30분의 만찬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 요리를 지휘한 사람은 호세 라몬 피녜이로(Jose Ramon Pineiro). 리오하의 촉망받는 젊은 세프라고 하더군요. 옆 테이블에 미국에서 온 커플이 있었는데 이들도 칭찬 일색입니다. 과장된 칭찬이 아니라 진심에서 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건 사족인데 이 커플을 며칠 뒤 산 세바스티안의 레스토랑 옆자리에서 다시 만납니다.

이렇게 예정에 없던 식사를 하고 나니 일정이 꼬여 버립니다. 배도 부르고 알딸딸하게 취기도 올라옵니다. 이쯤되면 로그로뇨의 축제가 전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산 밀란 호텔로 돌아와 눈을 붙이는 것 외엔 다른 방도를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호텔방에서 한밤에 깨고 나서야  로그로뇨 축제 생각이 간절합니다. 호텔 위치가 깊은 산골만 아니면 한번 나가보는 건데 이건 뭐 당최 엄두가 나질 않네요. 수도원 호텔에 묵는 것을 아쉬웠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가격 정보(유로): 테이스팅 메뉴 - 101.86/2인, 화이트와인 - 12.04/2잔, 레드와인 - 9.26/1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