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9일 화요일

2010년 스페인 여행기(12) -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도시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는 바스크 지방의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입니다.

공식적인 도시의 이름은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Donostia-San Sebastian)인데 도노스티안는  바스크 사람들이 이 도시를 부를때 사용하는 명칭이라고 합니다. 빌바오와 더불어 바스크를 대표하는 도시이며 인구는 약 20만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도시 역량과 생활 수준은 스페인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하니 이곳을 못본척 건너뛰고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Source: from Wiki  taken by Keta
그리고,
이곳은 세계 최고의 미식 도시이기도 합니다. 미슐랭 기준으로만 봐도 별3개 짜리 레스토랑인 아르삭(Arzak), 아켈라레(Akelarre), 마르틴 베라사테기(Martin Berasategui), 별2개인 무가리츠( Mugaritz), 별1개인 수베로아(Zuberoa)가 모두 이 작은 도시에 있다고 하니 경이로울 뿐입니다.  이뿐 아니라 바스크 버전의 타파스에 해당하는 핀초 바르(Pintxos bar) 가 밀집된 타운이라던가, 100년도 넘은 역사의 요리연구모임인 초코(Txoko)의 존재도  이 도시가 미식 성지로 인정 받는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도시에서의 2박3일간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Astoria7 이라는, 영화를 주제로 한 테마 호텔입니다. 아마도 올해로 58회를 맞는 유서깊은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이런 컨셉을 잡은게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호텔을 온통 영화 소품과 포스터로 장식했어요
우리가 묵은  Ben Gazarra의 방
때마침 영화제 기간이었습니다
도착 첫날은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도시를 둘러 보았습니다. 도시가 전체적으로 오래된 석조 건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리 상태가 매우 좋았고 거리도 무척 정돈된 모습이 여타 스페인과 매우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 인상을 줍니다
개인적으로 제 마음에 들었던 특별한 점은 인터넷 사용 환경이었습니다.  도심 여러곳에서 무선 인터넷을 만족스러운 속도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심 벤치에 유난히 노트북을 편 채 웹서핑을 하고있는 여행자가 눈에 띄더군요.
인터넷 환경도 도시 경쟁력
저녁이 되니 도시가 더 활력이 돕니다. 해변을 끼고 있는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조깅하는 시민들과, 퍼포먼스하는 예술가가 넘쳐납니다. 이 도시에 점점 빠져 듭니다.
8시인데 아직 환해요
동상인것 같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퍼포먼스

기대했던 핀초 순례는 둘째날 저녁에 시도했습니다. 일단, 구 도심지인 파르테 비에하(Parte Vieja)의 핀초 바 집결지를 향해 갑니다.
이런 골목이 거미줄 같이 있어요
그리고 맘에 드는 집을 찍어 들어갑니다. 테이블 위에는 이름 모를 핀초들이 즐비합니다.
이게 다 핀초들
주문하는 방법은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것 같았는데 그냥 최대한 눈치로 떼웠습니다. 첫번째 들른 집에서는 갯수로 계산했습니다. 몇 개 먹었는지를 우리 보고 알아서 기억하라고 하더니만 나갈때 갯수를 얘기하니까 그 숫자에 2.5유로를 곱해서 계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다른 손님들을 보니 다를 와인을 한잔씩 하길래 우리도 화이트 와인인 차콜리(Txakolí)를 주문해봅니다.  바텐더가 약간 오버하면서 차콜리 따르는 법을 보여 주네요. 병을 최대한 머리 위로 올려서 잔은 보지 않고 저를 주시하면서 와인을 실처럼 뽑아 내어 따라냅니다.
와인 따르기의 달인으로 임명하노라
핀초 순례는 맛도 맛이지만 체험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가게를 골라 들어갔습니다. 앗, 근데 여기는 프로토콜이 또 다릅니다. 핀초마다 가격이 천차 만별입니다. 문어 요리와 이베리코 하몽은 가격이 몇 배나 비쌌습니다. 가격이 비싼것은 반 접시로도 팔더군요.
여기서도 차콜리 한잔 더 했습니다
중국의 딤섬이 그렇듯이 핀초도 종류가 너무 많아서 이름을 알려고 하는건 아예 시도할 생각도 안했습니다. 재료도 참 다양한게 멸치, 문어, 하몽, 순대… 끝도 없어 보이는데 다행히 우리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풀포 아'라고 했던것 같은 문어 요리 - 올리브에 버무리는데 맛이 죽였어요
핀초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왠지 눈에 익은 한 장의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띕니다. 이창동 감독이 만들고 윤정희씨가 주연한 영화 시(Poetry)의 포스터가 이 가게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오늘부터 시작되는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 비경쟁부분에 특별 초청되었다는군요.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을 좋아하던 차에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포스터가 무지 반가웠습니다.
한국판보다 멋있었다는
두번째 가게에서 과다 지출을 하고 나와서 세번째 공략할 집을 찾아 골목을 어슬렁거리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집니다. 광장을 가득 메웠던 카페의 파라솔이 순식간에 정리됩니다.
원래는 파라솔로 가득한 광장이었는데 소나기 한방에 정리
그리고 그 여파는 핀초바들을 미어 터지게 만듭니다. 세번째  들어간 가게에서는 아예 큰 접시에 먹고 싶은 것을 담아서 선불을 치루고 먹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죄다 스페인식 와인 칵테일의 일종인 상그리아를 먹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문을 했더니 한 항아리 가득 내어 줍니다.


원래 목표는 10개의 핀초바를 순례하는 계획이었는데 3개에서 접고 말았습니다.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신것이 첫번째 패착이고, 작전없이 아무거나 집어 먹은게 두번째 패착이었습니다. 뷔페 먹을 때와 같은 '전략적 시식'이 필요한 듯 합니다.

이렇게 산 세바스티안의 미식 여행이 모두 종료됩니다. 베라사테기의 음식도, 핀초 거리의 음식도 영원히 못 잊을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호텔을 나서는데 바스크 관광청 직원이 인터뷰를 요청하더군요. 바스크 지방 체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조사관의 질문에 0.1초의 주저함도 없이 답한 건 '음식'이었습니다.

꼭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도시입니다.
콘차이 해변의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