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2일 화요일

2010년 스페인 여행기(8) - 리오하 와인 탐방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페인 와인 산지하면 역시 리오하(Rioja) 입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전통 방식의 와인 주조 방식과 19세기 유럽이 포도뿌리흑벌레 필록세라로 초토화되던 당시 이를 피해 이곳으로 대거 유입된 보르도 기술자에 의한 프랑스적인 주조 방식이 함께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미 1970년에 DO 제도가 도입되었고, 1991년에 DOCa가 스페인 최초로 시행되었으니 가히 스페인 와인의 대표 지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월29일에 열리는 하로(Haro) 마을의 와인 전쟁 축제와 바로 오늘(9월20일) 부터 시작되는 로그로뇨(Logroño) 시의 리오하 와인 축제 등이 있는 것도 우연히 아니겠지요.
어딜가도 포도밭

오늘 오전 일정은 브리오네스(Briones) 마을에 위치한 와인 문화 박물관(Museo de la Culture del Vino) 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서 리오하 와인에 대해 대략적인 이해를 한 후, 정보를 얻어서 인근 와이너리 둘러보고, 저녁엔 로그로뇨 시의 와인 축제로 향하는 환상의 일정을 머리에 그립니다.

오전 10시 개장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가 몇 대 없습니다. 속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이렇게 일찍 부지런 떨리 없지 하면서 당당하게 현관으로 들어서는 순간, 불꺼진 로비 한쪽에서 의아하게 우리를 바라보는 경비 아저씨의 눈빛이 느껴집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군요.  속으로 제발 개장 시간이 틀렸기를 바라면서 그가 넘긴 한장의 팜플릿을 받았습니다. 맨 위에 적힌 문구, "lunes cerrado". 이게 뭐지? 마침 우리와 같은 처지의 영국인 일가족이 하는 말, "Monday closed". 악~~~~~ .
lunes cerrado: 월요일은 문닫는다

그냥 돌아서기 뭐하고 해서 야외 정원에 심어진 와인용 포도 품종 전시밭을 구경합니다. 어림짐작으로도 200종이 넘는 포도 품종이 실제로 경작되고 있었고, 각 품종 옆에는 안내 푯말을 꽂아 놓았습니다. 스페인 품종 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호주 등 전 세계 유명한 와인 산지의 포도를 죄다 가져다 재배하고 있더군요. 이런 식으로 비교가 즉석에서 가능하다 보니 품종간 차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식으로 안내 푯말이 있고
옆에 실제 해당 품종이 자라고 있습니다
아무튼 뙤약볕 아래서 디카 놀이를 좀 하다가 다음 행선지로 향합니다.

이번에는 엘시에고(Elciego)마을의 마르케스 데 리스칼(Marqués de Riscal) 와이너리입니다. 이 와이너리는 1858년 리오하에서 최초로 보르도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한 곳으로 유명하며, 이러한 역사성 때문에 한때 공식적으로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으로 블렌딩하는 것을 허용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DOCa 규정상 아닌 듯 합니다).
오래된 역사만큼 규모가 상당합니다
사실 예약 없이 무조건 찾아 갔는데 다행히 수시로 투어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바로 티켓을 사서 무려 1시간 30분이나 진행되는 투어에 동참합니다.
대기하는 동안 기프트샾에서 기념품을...

먼저, 발효조를 보시겠습니다. 수확한 포도는 가지 제거하고 씨와 껍질을 포함해서 으깬 상태로 이 탱크 안에서 발효를 시킵니다. 발효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온도 조절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자동 온도 조절 장치 설치가 용이한 스테인레스 발효조를 사용합니다. 온도 조건, 발효 기간, 이스트 첨가 유무, 위/아래 순환 횟수 등이 양조장 마다의 노하우라고 합니다.
용량이 18,000 리터라고 들었는데… 아님 말고
일정 기간 발효를 시킨 후 파이프를 이용해서 압착기로 옮깁니다. 여기서 즙을 짜냅니다.
Free-run 방식과 Pressed 방식이 있대요
짜낸 즙은 다시 스테인레스 발효조로 가져가 2차 발효 과정을 거친 후 오크 배럴에 옮겨 담습니다. 그리고 숙성이 시작됩니다. 숙성 기간 동안에도 가만히 놔두는게 아니라 불순물 제거, 자연 증발분 보충 등이 주기적으로 진행됩니다.
스페인은 300리터, 보르도는 225리터, 부르고뉴는 228리터
와인의 등급에 따라 6개월에서 3년 정도의 숙성을 마친 와인은 병입(bottling) 단계를 거쳐 다시 병 숙성 과정에 들어갑니다. 그란 레세르바(Gran Reserva)의 경우 이 기간만 최소 3년이랍니다.
이게 돈으로 얼마야?
그리고 시장에 나오기 전에 레이블 작업 등 후처리 작업이 진행됩니다.
여긴 다 보여줘요

이런 식으로 보데가에 대한 투어가 진행되었습니다. 보통의 와이너리 투어는 이 정도 진행하면 딱히 보여줄 것도 없고 하니까 시음장으로 가서 품평회를 하고 종료를 합니다. 근데 여긴 아직 끝날려면 멀었습니다. 또 다른 부속 건물로 데리고 갑니다.

1883년에 지어졌다는 보데가 건물에는 아직도 예전 시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참나무로 만든 목조 방식의 발효조입니다. 이 발효조는 돌받침 위에 올려져 있는데 아래에서 불을 지펴 온도 조절을 했다고 합니다.
목조 발효조에서는 한번의 실수로 와인을 잃기도...
그 다음 안내된 건물은 와이너리가 설립된 시기와 맞먹는 1860년에 지어진 보데가입니다.  가이드를 따라 좁은 복도를 따라 들어가는데 같이 동행하던 스페인 방문객들이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고 사진을 찍어 댑니다. 바로 현 스페인 국왕을 위한 와인만을 별도로 관리하는 셀러입니다.
스페인 국왕이 먹는 와인
바로 옆의 육중한 철장문을 열고 다음 방으로 들어갑니다. 여기는 더 별천지입니다. 이 와이너리가 생긴 후 부터 생산된 모든 년도의 와인을 보관하고 있는 방입니다. 약 140년 정도의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
다 이 집 쥔장 소유랍니다
어휴, 먼지 좀 보세요
이렇게 와이너리 투어가 끝나고 다음은 시음 순서입니다. 시음장으로 이동 후 약간의 안주 거리와 함께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번갈아 마셨습니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 레세르바 2005(레드)와 루에다 베르데호  2009(화이트)

투어가 종료되었지만 사람들이 쉽게 자리를 뜨지 않더군요. 투어 내내 우리를 위해 영어 통역을 자청한 바르셀로나의 도시설계 엔지니어 출신인 카를로스가 아이폰4의 자랑질을 시작 합니다. 아이폰3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용자까지 모여들어 애플 사용자 모임이 결성됩니다. 참 희안한게 서로 사용하는 앱이 비슷비슷 합니다.  제가 아이패드를 꺼내자 분위기가 고조 됩니다.

이게 와인의 힘인지 잡스의 힘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