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르틴 베라사테기(Martin Berasategui)의 점심 식사를 하는 날입니다.
최고의 식도락의 도시로 알려진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에 위치한 이 미슐랭 별3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이벤트 중 하나 였습니다. 미슐랭 별3개는 그 자체를 위해서 여행을 떠나도 좋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맛’을 보여 주길래 그러는지 너무 궁금하던 차였는데 이번에 기회를 잡게 된 것입니다.
식당을 찾아가는 과정의 작은 에피소드:
네비게이션의 안내로 순조롭게 가던 중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공사로 길이 막혔더랬습니다. 이 구획을 벗어나 다시 접근을 하는데 아뿔사 계속 똑같은 지점으로 되돌아 오게 만들더군요. 이짓을 30분 이상했습니다. 슬슬 위기감도 오고... 궁리를 하다가 아예 완전히 반대편에서 접근하는 계획을 세우고 도시를 한 바퀴 두르다시피 해서 기어코 성공을 했습니다. 먹겠다는 신념이 만들어낸 네비와의 싸움에서의 승리였습니다. ^^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이 레스토랑은 모든게 여유롭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주위를 둘러 봅니다. 주차장 바로 앞에 넓은 잔디밭이 있고, 잔디밭 너머로 그림 같은 레스토랑의 전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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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오른편 파라솔 아래가 우리 테이블 |
계단을 따라 정문으로 올라 갑니다. 이때가 가장 흥분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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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수동(?)으로 저절로 열려요 |
안내에 따라 야외에 마련된 자리에 잡습니다. 따스한 햇살에 가벼운 미풍이 무대를 더 돋보이게 만듭니다. 우리 테이블에서 정원쪽을 바라 보고 찍은 전경입니다.
완벽한 무대 셋팅 |
먼저 식전주로 카바를 한잔 하면서 메뉴를 살핍니다. 음...메뉴가 익숙치 않군요. 저는 그냥 테이스팅 코스로 달리기로 합니다. 고기를 못먹는 와이프는 모듬 야채 샐러드와 생선 로스팅 구이로 일부 메뉴를 바꿔 주문을 했습니다.
다음은 소믈리에가 커다란 와인리스트를 가지고 등장합니다. 오호, 여기엔 좀 한다하는 와인이 다 있습니다. 찾는대로 다 나오니까 신기하더군요.
우니코(Unico)를 찾아 봅니다. 있습니다. 370 유로.
마고(Margaux)도 찾아 봅니다. 역시 있습니다. 250 유로.
이렇게 한 동안 와인 찾기 놀이가 계속됩니다.
한국에 비해서 참 알뜰한 가격이지만 와이프의 눈치가 보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베가 시실리아(Vega sicilia)의 발부에나(Valbuena 5º) 2004에서 타협했습니다. 140 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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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니코의 세컨드 와인 발부에나 -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
가넷빛이 감도는 |
그리고 무대의 막이 오릅니다. 두~둥~.
Salmon Keia lighly smoked with seaweed, powder of hazelnut, coffee and vanilla:
바스크식으로 연어를 살짝 훈제한 뒤 해초와 함께 파마산 에멀전에 둘러 서빙됩니다. 헤이즐넛, 커피, 바닐라 가루의 향은 코를 즐겁게 합니다. 가벼운 흥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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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부터 뿅가게 만드는 |
Mille-Feville of smoked eel, foie gras, spring onions and green apple:
푸아그라를 맨밑에 받치고, 그 위에 훈제 장어와 다시 푸아그라. 맨 위에 약간 바삭하니 단 맛나는 사과 토치(?)한 것. 한입 베어물면 맛이 대비가 뚜렷하게 다가 옵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식욕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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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퍼일(Mille-Feville) 스타일로 |
Cod “Kokotxas” with txakoli, spring onion, salted sea cucumber and its cloud:
차콜리 와인, 파, 해삼으로 맛을 낸 대구뽈 요리입니다. 요건 한입에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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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 장식 좀 보세요 |
Coated oyster on a grapefruit and nuts salad, finger lime:
굴전맛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인데 자몽, 핑거라임 소스와 환상 궁합이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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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해봐야지 |
Little pearls of raw fennel, risotto and an emulsion:
다음은 펜넬의 장난입니다. 얇고 길쭉한 것은 생펜넬, 작은 쌀 알갱이 모양도 펜넬, 에멀전에도 펜넬입니다. 같은 재료에 다른 느낌과 맛. 세프의 창조적인 장난질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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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히멀건 |
Fake Iberian bacon cannelloni with squid and white wine:
이번에는 이베리안 베이컨 맛이 나는 카네로니입니다. 이건 고기가 아니니까 먹어 보라고 와이프한테 권해도 좌우지간 고기맛은 싫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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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분자요리? |
Farm’s egg, mushrooms and light broth from the forest:
이 요리 서빙전에 웨이터가 혹시 못먹는거 있냐고 물어 보더군요. 당근 없다고 대답하고 약간 후회하고 있는데 이 요리가 나왔습니다. 정체모를 걸쭉한 국과 반숙도 안된 싱싱한 달걀이 담겨 있는 요리입니다. 달걀을 터트리니 노른자가 흘러나와 국물과 조화를 이루며 오묘한 맛을 내기 시작합니다. 아~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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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타일이야 |
Warm vegetable hearts salad with seafood, cream of lettuce and idionized juice:
이제는 눈이 즐거워지는 시간입니다. 이런 구성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요리사라고 해야 할지 조각가라고 해야 할지요. 한동안 포크를 대지 못하고 구경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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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ionized juice가 뭘까? |
Roast red mullet with soft scales crystals and white chocolate juice with seaweed:
이제는 점점 공연의 클라이맥스로 치닫습니다. 서빙되는 요리는 지중해산 숭어를 바삭하게 요리한 것입니다. 바삭한 비늘과 부드러운 속살의 조화속에 약간 짭쪼름한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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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떻게 이런 식감을 |
Roasted Araiz’s pigeon, fresh pasta with mushrooms, chives and touches of truffle cream:
이 요리가 서빙되어 테이블위에 놓였을 때의 포스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한 엽조류의 향이 코 끝을 자극합니다. 한점 썰어 입에 넣었을 때의 풍미는 아직도 입에 군침을 돌게 만듭니다. 육질의 상태가 헛점을 찾기 어려운 완벽한 조리입니다. 함께 마시는 발부에나도 이 요리를 만나니 더욱 더 자신을 뽐내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누가 보던 말던 감탄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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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비둘기 많은데 |
Roasted Sole:
이것은 와이프가 주문한 생선 요리입니다. 제 메인 요리 시간과 정확하게 맞춰 테이블에 올라 왔습니다. 와이프가 보통은 생선 껍질을 안먹는데 오늘은 설겆이가 필요없을 만큼 싹싹 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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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굽기의 달인 |
그리고 이어지는 디저트와 에스프레소의 향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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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zen Coconut with rum ice shavings, carrot’s slices, beetroot comp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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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colate with acacia’s honey and irish coff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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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먹으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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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 에스프레소 잔 |
자... 이렇게 숨가쁜 3시간의 공연이 종료되었습니다. 공연은 끝났지만 객석을 떠나지 못하는 여운이 한동안 계속됩니다. 참 경이로운 마르틴 베라사테기에서의 경험이었습니다. 주방에 박수를 보냅니다. 웨이터가 한국분도 한 명 주방에 있다고 알려주네요.
주위 테이블을 둘러보니 일본인들도 있고, 대가족을 데리고 행차온 듯한 스페인 손님도 있고,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듯한 분도 눈에 띕니다. 그 와중에 왠지 익숙한 커플이 눈에 띕니다. 누구지, 내가 아는 사람인가? 저쪽 테이블도 같은 고민을 하는 듯 한데 서로 갸우뚱하고 있기만 합니다. 그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갑자기 기억이 납니다. 며칠 전 리오하 메르케스 데 리스칼 호텔 식당 옆 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커플이었습니다. 아마도 서로를 보면서 팔자 좋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ㅋㅋ
저녁에 호텔에서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맛이 있다 없다 문제로 좁혀 결론 지을 사안은 아닌것은 틀림 없습니다. 서빙? 일관성? 다 중요하긴 한데 그것 가지고도 다 설명이 안되더군요.
식사를 하는 중에 또 식사를 마친 후 제가 받은 느낌은 한편의 대작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술같은 음식이라… 그렇다면 미슐랭이 보고자 하는 것은 창조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용은 잠시 접어두고 떠난 ‘맛’의 기행. 여러분들에게도 권해드립니다.
[가격 정보(유로): 테이스팅 메뉴 - 165/1인, 발부에나 와인 - 140/병, 카바 - 24/2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