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 5일째. 이제부터는 스페인 북부 지방로 갑니다. 오늘의 여정은 빌바오(Bilbao)의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과 산티아나 델 마르(Santillana del Mar)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벽화를 구경하고 숙소가 있는 산탄데르(Santander)의 해변 호텔까지 가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북으로 달리다보니 어느덧 빌바오의 상징 구겐하임 미술관 간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때까지는 지금까지의 다른 도시에서의 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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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모양을 닮았군요 |
톨을 통과해서 빌바오의 외곽 도로에 진입하니 바스크(Basque) 지방 최대 도시답게 트래픽이 갑자기 증가하더니, 외곽 도로를 내려서 도심지에 진입하고부터는 끔찍한 교통 정체를 만나게 됩니다. 교통량이 많다보니 라운드-어바웃이라고 부르는 로터리 시스템도 차량 흐름을 감당하지 못하는가 봅니다. 로터리마다 신호등으로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여차저차 해서 간신히 구겐하임 미술관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번엔 주차가 문제가 됩니다. 할 수 없이 조금 떨어진 쇼핑센터에 주차를 하고 네르비온(Nervion)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갑니다. 2 Km 정도 걷다보니 구겐하임의 자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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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형상은 의도적 |
정말이지 어제 라 리오하에서 봤던 티타늄 지붕 호텔과 느낌이 비슷하군요. 이렇게 두 건물을 연달아 보니 프랭크 게리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가 팍팍 느껴집니다. 공통적으로 티타늄 소재를 사용했으며 곡선의 미와 티타늄 산화막 두께의 차이에 의한 빛의 반사를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특히, 이 빌바오 구겐하임의 경우는 전체적으로는 배의 느낌을 주면서도, 막상 외벽 처리는 물고기의 비늘에서 컨셉을 차용했다고 하네요. 내부에 워낙 큰 설치 미술 작품을 전시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내부 기둥은 없애면서도 외벽 두께는 최소화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관계로 공학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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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이 예술 |
1층에 들어서니 티켓을 사려는 줄이 꽤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만 인터넷으로 미리 입장권을 구매한 덕에 바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입장시에 음성안내기를 나줘 주는데 무척 유용했습니다. 전시실마다 부여된 고유 번호를 음성안내기에 입력하면 안내가 시작되는 방식인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의 일부 미술관에서 채택하고 있는 과하게 자동화된 안내 시스템보다 오히려 사용자 편의성이 좋은 것 같았습니다.
전시되는 작품은 모두 설치 미술 작품이었는데 하나같이 개성과 창의력이 출중합니다. 약 1시간 남짓의 관람을 하고나니 뇌가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이 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연간 100만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관람 시간도 짧다보니 회전율(!)도 좋고, 여유 시간도 많으니 돈 쓸일도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겐하임을 유치한 후 경제가 살아났다는 빌바오시의 주장이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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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엄청 큰 거미 조각상이 있어요 |
구겐하임 다음의 행선지는 인류 최초의 벽화가 존재한다는 알타미라 동굴입니다. 빌바오를 벗어나서 해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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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해안 도로에서 본 대서양 |
알타미라 동굴을 가기 위해서는 산탄데르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도착한 후 다시 지방도로를 타고 산티아나 델 마르 마을을 찾아가야 합니다. 일단, 마을에 들어서면 알타미라 미술관(Muses de Altamira) 푯말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실제 원본이 있는 동굴은 학술 목적외에는 공개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대신 인근에 미술관을 만들어서 복제 동굴을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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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건물은 매표소, 뒤 노란 건물이 복제 동굴이 있는 미술관 |
모형 동굴이 있는 전시실의 관람은 30분 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단체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관람도 있다고 하는데 시간을 잘 맞춰야 합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영어 관람은 모두 끝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미술관측에서 자유 관람을 제안합니다. 감사할 뿐 입니다. 육중한 문이 열리고 저와 와이프 단 둘이서 선사시대로 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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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릿 한 장 달랑 들고 |
입장을 했습니다만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사실 뭘 봐야 할지를 모르겠더군요. 살짝 카메라에 손을 대니 어둠 어디선가 내부 감시인이 득달같이 튀어 나옵니다. 예상은 했었지만 카메라 촬영이 금지된 구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걸작입니다. 단순한 감시인이 아니고 이 분야 전공자 같았습니다. 영어 실력도 보통이 아닙니다. 우리가 뭘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안내를 자청하더니 물만난 고기처럼 실력 발휘에 들어갑니다. 대충 기억나는 몇 가지를 적으면:
- 정확한 연대는 아직도 논쟁이 있지만 18,000년 전으로 추정
- 한 시기에 다 그린게 아니라 몇 천년의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른 인류가 그림
- 최초의 화가는 챠콜(숯)을 이용해서 동물의 외곽만을 드로잉
- 후대의 화가가 황토를 이용해서 빨간색의 색칠을 더함
- 소 뿐 아니라 말, 산양, 멧돼지 등 다양한 대상
- 손 바닥 자욱은 의도적으로 남긴 것임
사실 설명이 없었다면 형상을 잡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이 친구 덕분에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시청한 셈이 되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문명 세계로 다시 나오는데 이유없는 뿌듯함이 밀려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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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가도 제가 보는 이런 하늘을 봤겠지요 |
동굴 관람 후에는 산티아나 델 마르 마을로 내려와 낡았지만 순수한 마을 구경을 합니다. 공방에선 오르골과 피노키오 인형을 샀고, 바에 들려 와인 한잔에 타파스로 요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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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돌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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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공방, 바, 식당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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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걸려있는 피노키오 목각 인형을 샀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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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 바에선 요기를 |
바쁜 하루 일정을 마치고 산탄데르의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산탄데르 해변에 제일 근접하게 위치한 호텔인데 프라이스라인을 통해 아주 저가로 예약한 호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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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탄데르 해변의 Chiqui 호텔 |
예상대로 우리의 바램을 100% 충족시켜 주는 대서양 조망권 뷰를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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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백사장을 바라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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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서 본 뷰 |
저녁엔 해변을 거닐면서 사람 구경을 했습니다. 운동하는 사람, 개와 산책나온 사람, 아직 수영하고 있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데이트 하는 사람…. 늦은 시간임에도 백사장이 생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