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보르도의 와인 산지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와인 애호가들에게 보르도(Bordeaux)는 일종의 성지같은 곳입니다. 누구나 처음에 와인을 입문했을 때 듣게 되는 이름이 보르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메독(Medoc) 지구는 조금 더 특별한 설레임이 있는 곳입니다. 바로 보석과 같은 와인 산지가 이곳에 밀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날인 오늘은 지롱드(Gironde)강의 왼쪽 지역(Left bank)에 위치한 생 테스테프(St-Estephe), 포이악(Pauillac) 그리고 생 줄리앙(St-Julien) 마을을 돌아 보기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애초에는 현지의 투어 프로그램을 활용할 생각을 했었으나 구글링을 해본 결과, 가격이 저렴한 상품은 제가 원하는 경로가 나오지를 않았고 좀 괜찮다 싶은 것은 비용이 높을 뿐 아니라 예약이 진작에 마감되어 버려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니 이즈음이 시기적으로 별로 좋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9월 말은 포도 수확을 한참 하는 시기로서 많은 샤토들이 방문객을 일시적으로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주말은 거의 대부분의 샤토가 문을 닫는 다는것도 나중에 알았으며 무엇보다고 좀 이름있다고 하는 샤토들은 사전 예약이 한참 전에 끝난다는 점도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샤토에 투어 신청을 하고 그 중에서 2군데서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바로 샤토 린쉬 바주(Chateau Lynch Bages)와 샤토 팔메(Chateau Palmer)가 그 곳입니다. 그래서 이 두 곳은 투어를 하면서 찬찬히 살펴보고 나머지 와이너리에서는 샤토 위주로 사진 찍기 놀이나 해야 겠다고 작전을 짭니다.
토요일 아침 답게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포이악 마을로 들어 섰습니다. 우선 들려야 하는 곳은 인포메이션 센터입니다. 지롱드강 선착장 주변에 위치한 이곳에서 이런 저런 정보와 지도를 얻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생각보단 개별 마을의 규모가 크질 않고, 마을과 마을도 백투백으로 붙어 있기 때문에 이동하느라 시간을 뺏길것 같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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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친절하고, 기념품도 좋아요 |
오전에는 샤토 린쉬 바주 투어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투어 마지막 순서는 시음을 하는 과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원래 시음때는 맛만 보고 나머지는 뱉어 내야 하는데 하다보면 그게 잘 안지켜집니다. 대낮부터 알딸딸해진 상태로 운전하기가 뭐해서 일단 끼니부터 해결하고 움직이기로 합니다.
오늘의 점심은 초간편식입니다. 가게에서 빵과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서 오전에 봐 둔 지롱드강가 옆의 작은 야영장으로 향합니다. 이곳에 오니 RV 캠핑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처럼 간단하게 먹거리를 싸와서 소풍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지롱드강은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전혀 운치가 없습니다. 지형 영향 때문인지 강의 색깔이 온통 진흙빛입니다. 누군가 강의 색깔은 하늘을 닮는다고 말했다던데 아마도 그 사람은 여기를 안와본 것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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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따로, 강 따로 |
강 바람을 쐬며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마을 탐방에 들어갑니다. 확실히 프랑스의 포도밭은 앞서 본 스페인의 그것에 비해서 우월한 비쥬얼을 갖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좀 횡하니 거칠은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곳은 오밀 조밀하고 아기자기한 것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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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구릉지대는 이곳의 특징 |
생 테스테프(Saint-Estephe) 마을
생 테스테프는 오늘 둘러보는 마을 중에 제일 북쪽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좀 심하게 적막한 이 마을은 너무 조용하다 못해 사람이 사는 마을인가 싶을 정도 였습니다.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마을 중심에 위치한 메종 두 뱅도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오직 마을 광장 한쪽 벽에 그려진 지도만이 우리를 반겨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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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만 덩그러니 |
맨 먼저 찾은 곳은 포이악과 남쪽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는 샤토 코스 데스투르넬(Chateau Cos d’Estournel)입니다. 이곳은 보르도 샤토 중에 가장 특색있는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고딕식도 아니고 그리스식도 아닌 양식에 밝은 연한 노란색 빛이 나는 건물 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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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의 인도 취향이 반영된 스타일 |
바로 인근에는 개성 강한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라퐁 로쉐(Chateau Lafon Rochet)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척보는 순간 라벨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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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이 매력적인 |
라벨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보너스로 병 스케치한거 보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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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은 미완성 |
이제부턴 정식 도로가 아니고 ‘밭 사이로 막가’입니다. 이 와중에 짠 하고 등장한 샤토 몽로즈(Chateau Montrose). 한쪽면은 강을 보고 있고, 반대쪽 밭은 구릉에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복받은 곳으로 알려져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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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인 좋아하시눈 분 많던데 |
이 마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와이너리인 샤토 칼롱 세귀(Chateau Calon Segur)은 마을의 북쪽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은 칼롱에 있다’라는 주인장의 명구와 하트 모양의 라벨덕에 웬지모를 친근감을 느끼는 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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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my heart is in Calon" |
포이악(Pauillac) 마을
드디어 포이악으로 들어섭니다. 메독에서도 가장 호기심을 자극했던 바로 그 마을. 그랑 크뤼 클라세 특1등급 와인만 3개를 가지고 있는 전설의 마을입니다.
생 테스테프에서 포이악으로 내려오다보면 샤토 무통 로쉴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간판이 보입니다. 바롱 필립 드 로쉴드에 의해 1973년에 기어코 전설을 만들어낸 집념의 샤토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듯 했습니다....만...아쉽게도 현재는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라 접근이 불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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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는 공사 중 - 재오픈하면 박물관 먼저... |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매우 우월해(?) 보이는 밭이 나타나고 위엄있는 울타리로 둘러싼 샤토 라피트 로쉴드(Chateau Lafite Rothschild)가 보입니다. 18세기에 프랑스 왕궁에 와인을 공급함으로써 보르도 와인이 고급 와인으로 인정 받게 된 선구자적 역할을 한 맏형에 해당하는 와이너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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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통째로 도도하더라는 |
약간 더 밑으로 내려오면 이름이 길어서 힘든 샤토가 납니다. 바로 샤토 피숑 로그빌 콩테스 드 라랑드(Chateau Pichon Longueville de Lalande). 와인도 알아주는 와인이긴 하지만 샤토도 말 그대로 그야말로 ‘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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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샤토'는 여기가 아닌지 |
여기서 강쪽으로 넓게 펼쳐진 밭을 바라보면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풍경이 나타납니다. 크지는 않지만 강렬한 느낌의 첨탑과 오래된 수령의 밭. 바로 엄청 강한 넘.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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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1620년에 새로 지은거 |
생 줄리앙(Saint-Julien) 마을
강렬했던 포이악의 기억을 뒤로 한 채 다음 인접 마을인 생 줄리앙으로 향합니다. 처음 만나는 와이너리는 샤토 레오빌 푸아페레(Chateau Leoville Poyferr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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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타고 가면서 찰칵 |
익숙한 이름의 푯말을 따라서 강 반대 방향으로 깊숙히 들어갔더니 한국에 많이 알려진 샤토 탈보(Chateau Talbot)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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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슈벨과 탈보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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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보네 밭이에요 |
다시 메인 도로로 돌아와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멋진 건물이 나오는데 이름이 샤토 란고아 레오빌 바통(Chateau Langoa Leoville Barton)입니다. 그러고보니 생 줄리앙 마을에는 유난히 레오빌(Leoville)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샤토가 많이 있습니다. 자료를 좀 찾아보니 원래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던 와이너리였는데 프랑스 혁명 직후 이리저리 쪼개져서 지금과 같이 좀 복잡한 족보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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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이리시 소유 |
이런식으로 와이너리 찾기 놀이를 하면서 메독의 3개 마을 순례를 마쳤습니다. 마지막 남은 마을인 마고는 월요일날 샤토 팔메를 방문하면서 들려볼 생각입니다.